등록 : 2019.09.24 21:13
수정 : 2019.09.24 21:18
과거 정부선 인상 뒤 잇단 실각
아베 2014년 8%로 올렸을 때에도
GDP 3분기 연속 마이너스 기록
개헌과 함께 내걸고 승리 자신감 속
미·중 갈등 등 변수 있어 성공 미지수
일본 최대 덮밥 체인점인 ‘스키야’는 이달 초 ‘이상한’ 가격 조정안을 발표했다. 다음달부터 주력 상품인 규동(소고기덮밥)을 고객이 점포 안에서 먹으면 가격을 기존 325엔에서 6엔 내려 319엔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포장해서 가져가면 이전과 같이 325엔을 유지한다고 했다. 점포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손님에게 오히려 더 싼 가격을 적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한 가격 조정’의 배경에는 소비세(부가가치세)라는 변수가 자리잡고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일본 정부는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인상한다. 정부는 소비세율 인상 뒤 소비 감소를 막기 위해 식품과 정기구독 신문 등에 대해서는 소비세율을 기존의 8%로 유지하는 ‘경감세율’ 정책을 도입한다. 하지만 식품의 경우에도 점포 안에서 식사하면 소비세율 10%가 적용되고, 가져가면 8%가 적용된다. 스키야의 가격 조정 계획에 소비세 변수를 더하면 점포 내 식사 319엔+소비세율 10%, 포장 325엔+소비세율 8%로 똑같이 세금 포함 350엔이 된다. 이는 기존 가격과 같아, 스키야는 실질적으로 세금 인상에도 가격을 동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소비세율 인상 계획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신용카드나 전자화폐처럼 현금을 쓰지 않고 물건을 살 경우 소비세 일부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포인트 환원 제도’(내년 6월까지 적용)까지 고려하면, 세율은 실질적으로 10%, 8%, 6%, 5%, 3% 등 5가지로 나뉜다.
아베 정부가 이런 복잡한 구조까지 만들어낸 이유는 소비세율 인상이 ‘정권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비세 도입을 추진한 이는 오히라 마사요시 정부였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직접세 수입 감소가 배경이었다. 오히라 총리는 79년 1월 ‘일반소비세’ 도입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같은 해 10월 중의원 선거 기간 중 포기 선언을 했다.
최초 도입은 10년 뒤인 89년 4월 다케시타 노보루 정부 때였다. 당시는 아직 거품 경제가 꺼지기 전이라 경제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여론의 반발은 거셌고 정경유착 비리인 ‘리크루트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다케시타 내각은 2개월 만인 6월에 총사퇴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정부는 97년 4월 소비세율을 5%로 올렸지만, 아시아 외환위기로 경제 상황 악화가 겹쳐 이듬해 실각했다. 2012년 옛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10%로 단계적 인상 법안을 당시 야당인 자민당과 공명당과 합의해 통과시켰으나, 그해 말 중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실각했다.
아베 정부가 소비세율을 인상하고도 장기 집권을 이어가는 유일한 예외다. 그런 아베 정부도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8%로 올린 뒤 국내총생산(GDP)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충격파를 감내해야 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주위에 “이 정도로 경기가 후퇴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후 10% 인상 계획을 두차례나 연기했다.
아베 정부가 이번에 다시 소비세율 인상에 나선 것은 정치적 기반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비세율 인상 계획은 아베 총리가 “필생의 과업”이라고 표현했던 헌법 개정과도 관련이 있다. 개헌안에 자위대 존재 규정을 추가하는 게 핵심인데, 이에 대한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교육 무상화 취지를 담은 규정 삽입도 함께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비세율 인상으로 마련한 재원 중 일부는 유아교육 무상화에 쓰인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헌법 개정과 소비세율 인상을 전면에 내걸고 승리한 점도 자신감의 바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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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지하철역에 24일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지하철 요금 인상 공고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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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비세율 인상 뒤 경기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 과거 소비세율을 인상했던 총리들은 스캔들이나 세계 경제위기가 겹치며 쓰러졌는데, 이번에는 미-중 무역 마찰로 인한 세계 경제 변화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를 향해 달려가는 아베 총리가 이번에도 소비세율 인상이라는 위험 요소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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