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앞두고 ‘욱일기 응원 허용’ 논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달리 욱일기가 살아남은 이유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부터 아베 정권까지 욱일기의 역사 10분만에 설명해드립니다
▶유튜브로 바로 보기 : https://youtu.be/HtstcfyDtnw
생각해보면 한일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항상 ‘욱일기 논란’이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한국 선수의 ‘독도는 우리땅’ 세리머니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반발하자, 한국은 “욱일기 응원 역시 정치적인 행위”라며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서는 해상자위대 함선의 욱일기 게양 자제를 요구하는 한국의 요청을 일본이 거부하며 불참하기도 했고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로 인해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는 욱일기 사용을 허용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조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욱일기는 1870년 일본 육군의 정식 군기로 채택되면서 탄생했습니다. 가운데 붉은 원(히노마루)이 육군기보다 왼쪽으로 치우쳐진 것이 해군의 깃발입니다. 이 깃발을 단 일본 해군 함선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무찔렀고, 1941년 미국 진주만 공습을 이어갑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들로서는 욱일기가 일본 전쟁범죄의 상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법에 의해 금지된 반면, 일본의 욱일기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걸까요? 일본 정부는 왜 아직까지 ‘욱일기는 정치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걸까요? <한겨레> 전 도쿄특파원이자 국제뉴스팀 길윤형 기자가 들려주는 욱일기의 역사,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출연 길윤형 기자
촬영·연출 황금비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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