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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14:18 수정 : 2019.11.30 02:04

지난 2017년 김종필 증언록 일본어판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오른쪽) 전 총리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전후 일본 총리로 야스쿠니 참배 첫 정치인
평화헌법 개정 주장…미-일 동맹 강화 역점

지난 2017년 김종필 증언록 일본어판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오른쪽) 전 총리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일본 전후 보수파의 거두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101.

<교도통신>은 나카소네 전 총리가 29일 오전 7시 도쿄도 내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보수색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도쿄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으며,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28살 때인 1947년 고향인 군마현에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장해 ‘청년 장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걸고 1982년 총리에 오른 그는 일본 신보수주의의 시작을 알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85년 8월15일 패전일에 전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그의 첫 참배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일 동맹 강화에 힘을 썼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는 두 사람 이름의 앞글자를 딴 ‘론-야스’ 관계로 유명하다. 1983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 열도를 소련을 막는 “커다란 배”에 비유하는 이른바 ‘불침 항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방위비 분담 증가를 미국이 요구하자, 국내총생산의 1% 이내로 방위비를 억제하던 방침인 ‘방위비 1% 룰’을 깬 예산을 편성해 일본 군비 확대에 불을 붙였다.

그의 대외 노선은 냉전 시대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자는 생각에 방점이 찍힌 경우가 많았다. 아시아 주변국에 대해서는 보수파이지만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던 배경이다. 첫 야스쿠니신사 참배 뒤 중국이 맹렬히 비판하자 이후 참배를 하지 않았다. 일본과 관계개선을 꾀하던 후야오방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입지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1983년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2017년 일본 외무성이 비밀해제한 문서에 따르면 86년 중국을 방문해 후야오방 총서기에게 한국이 중국과 수교할 의사가 있다고 전하면서, 이 경우 일본은 북한과 수교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당시로는 이례적인 5년간 장기 집권을 했던 나카소네는 퇴임 이후에도 원로 보수 정치인으로 영향력을 유지했다. 그의 집권은 이후 아베 총리와 같은 일본 보수 정치인 집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였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외교에서는 때로는 신중한 행보를 보였으며, 이 점에서 전후 세대이자 역사 수정주의적 인식을 내비치는 아베 총리와는 다르다. 아베 총리는 “전후 큰 전환점 때 조타역을 완수했다”며 “깊은 슬픔을 금할 수 없다. 국민 모두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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