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지난달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승리를 믿는 폭도들이 워싱턴의 연방 의사당에 난입해 큰 충격을 줬다. 민주당 여성 의원 중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력으로 정당한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움직임은 내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하기야 그 폭도들은 뒤집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야말로 진짜 결과를 알고 있다고 믿어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거기엔 음모론의 두려움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정치에 참여한 시민들이 사실을 공유하고 의견을 개진해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말한다. 논의의 바탕이 되는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대더라도 자신이 믿는 이야기만 고집하는 사람이 다수 존재한다면 민주주의는 성립하기 힘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음모론을 퍼뜨려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그 죄는 거대하다.
이상한 것은 일본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믿는 음모론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별을 공언하고 흑인이나 여성에 대해 억압적이었다. 비슷한 차별을 해왔던 일본인들이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전에 배외주의나 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해온 ‘넷우익’과도 겹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익들은 일본 내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한 적이 있다. 지난해 가을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해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됐다. 이는 지난 2019년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한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것을 비판한 인물들이 중심이 됐다. 우익 성향으로 알려진 성형외과 의사인 다카스 가쓰야 원장과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등이 주도했고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도 지원했다. 요컨대 역사수정주의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상식적인 공직자를 끌어내리려는 책동을 한 것이다.
포퓰리즘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성 정치를 부정하는 과격한 언설로 대중의 지지를 모으려는 정치인들의 수법이다. 경제의 세계화로 몰락하고 있는 중산층과 빈곤층을 지지 기반으로 한다. 일본의 경우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과 내셔널리즘의 결합이 특징이다. 나고야 시장, 오사카 지사 등은 전형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인데, 이들은 난징 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일본의 과거를 미화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이치현 지사의 해직을 요구하는 서명도 문제가 많았다. 아이치현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밀 조사한 결과 서명의 80% 이상이 가공의 이름, 동일한 필적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해직 요구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제도다. 허위 서명으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지사를 파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이는 선거의 정통성을 부정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같은 폭거다. 이 정도의 대규모 부정은 조직적인 범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이데올로기와 허위, 부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다카스 원장은 복수이자 음모라고 말한다. 모두 의미를 알 수 없는 책임 회피다. 미국과 같은 음모론자가 일본에도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가와무라 시장과 다카스 원장은 평소에도 주변을 떠들썩하게 하는 인물로 티브이나 스포츠신문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웃을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 기도는 초기 단계에서 철저히 규명하고, 없애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코로나19 대책의 실패와 여당 정치인의 부정부패로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우파 포퓰리즘을 방치하다가는 여당(자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그쪽으로 움직일 위험이 있다. 일본의 미디어는 이런 현상에 대한 위기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