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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빼놓는 개떡

등록 2011-11-30 11:01

» 고나무 기자
» 고나무 기자
한겨레21
[KIN] [입만 살아가지고] 도전-인스턴트 호떡 b>

유명한 주방장은 대부분 남성이다. 길거리 음식에서는 반대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11월 말 늦은 밤 얼큰히 취한 채 어묵 냄새에 끌려 포장마차 휘장을 걷었다가 아저씨 얼굴을 보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저씨는, 더럽다. 이 무슨 무지막지한 남성차별주의냐고 따지지 말라. 나도 아저씨 해봐서 안다. 아저씨- 지금은 할아버지가 됐지만- 시절의 아버지도 봤고, 아저씨였던 삼촌도 봤으며, 아저씨들인 수많은 <한겨레>의 남자 기자 선배들을 보고 있다, 지금도. 반갑게 웃으며 화장실에서 인사를 나누다가도 배설을 끝내고 손도 안 씻고 그냥 나가는 아저씨들의 뒷모습을 보며 ‘악수만은 하지 말자’고 생각한 적은, 더 많다. 그러므로 호떡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아저씨 얼굴을 보면 그냥 나오는 내 버릇을 용서해달라는 얘기다. 회사 근처에 호떡 아주머니가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이번 도전은 하지 않았을 게다.

조리법은 단순했다. 인스턴트 호떡은 크게 세 봉지로 구성돼 있었다. 제일 큰 봉지는 밀가루 봉지다. 그냥 밀가루가 아니고 물만 부으면 반죽이 되도록 탈지분유·합성팽창제 등의 성분이 함께 들어가 있다. 백설탕·흑설탕 등으로 만들어진 잼믹스 옆에 인스턴트 효모 봉지가 있다.

반죽 그릇에 물 110㎖와 인스턴트 효모 4g을 넣고 젓는 건 쉬웠다. 호떡가루 240g를 여기에 넣고 젓는 순간부터 ‘어라, 이것 봐라’란 생각이 떠올랐다. 계량컵은 귀찮았다. 대충 물 반컵을 따랐다. 순식간에 합성가루는 강화 개펄보다 점도가 더 높은 반죽으로 변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는 사실을 5분 만에 느꼈다. ‘손에 식용유를 바르고 잘 섞인 반죽을 약 50g씩 떼내어 넓게 펴고 숟가락으로 가운데에 잼믹스를 넣고 터지지 않도록 잘 오므려준다’는 조리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었다. 식용유를 바른 손에도 끈적한 반죽이 계속 달라붙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너무 많아 반죽이라기보다 그냥 ‘죽’에 가까웠다. 왼손에 올린 반죽에 설탕을 넣었지만 ‘오므린다’는 행위를 할 수 없었다. 오므린다는 느낌으로 반죽을 만지자, 순식간에 호떡은 반죽과 설탕의 ‘혼합물’이 돼버렸다.

‘예열된 프라이팬에 오므려진 부분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약한 불로 굽는다. 밑부분이 노릇해지면 뒤집어서 누르개로 눌러 1~2분 굽는다. 다시 뒤집어서 뒷면을 1~2분 굽는다’는 마지막 조리법은 충실히 따랐지만, 이미 내가 만든 괴음식은 호떡이라기보다 호떡 재료로 만든 개떡이 돼가고 있었다. 맛을 보는 순간 ‘겉보기보다 먹을 만한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은 민망하다. 그 민망함은 호떡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변했다.

호떡 반죽은 쉴 새 없이 달라붙었다. 한켠에선 호떡이 타지 않도록 프라이팬을 주시해야 했다. 호떡은 영화 <모던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 노동처럼, 혼을 빼놓는 떡이었다. 호떡을 만들어보니 알겠다. 호떡 아저씨들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호떡을 굽고 있던 게 아닐까? 아저씨 얼굴만 확인하고 바로 포장마차를 박차고 나와버리는 내 지난 행동을, 아주 조금 반성했다. 다음주엔 회사 근처 호떡 아저씨의 호떡을 사먹어봐야겠다. 물론, ‘하루에 화장실 몇 번 가느냐’란 질문만 하진 않을 게다. 손에 호떡이 들러붙지 않게 하는 비법이 뭔지도 물을 예정.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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