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2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박연철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상임대표(왼쪽 두 번째)가 우토로 주민회 하수부 부회장과 엄명부 부회장(맨 오른쪽)에게 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액 3억3천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한겨레21
[보도그 뒤] 일제 때 비행장 건설 위해 동원된 조선인 합숙소에서 유래한 우토로 마을… 한-일 사회 모금으로 퇴거 없이 새 터전 만들어
따뜻한 인사말이 한동안 이어졌다. 서로 어깨를 두드렸고, 더러는 고개 돌려 눈물을 훔쳤다. 지난 3월20일 오전 10시께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19층 기자회견장에선 오랜 싸움의 끝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에 재일조선인 마을이 있다. 가로 100m·세로 300m 남짓인 우토로 마을(약 6400평·2만1157㎡)을 다 도는 데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작은 땅 덩어리에 빼곡히 65가구 200여 주민이 살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손자를 볼 때까지 일본도, 한국 정부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을엔 지금도 변변한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잊혀진 역사와의 힘겨운 싸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사용 비행장 건설을 위해 일제가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 함바(합숙소)가 마을의 시작이었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비행장 건설업체 사장은 ‘A급 전범’이 됐고, 1960년대 이 업체와 합병한 닛산으로 마을 토지 소유권이 넘어갔다. 닛산 쪽이 1987년 이를 제3자에게 매각해, 우토로 주민들의 외롭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기댈 곳 없던 주민들은 강제퇴거의 위협 속에 ‘고국’을 찾았다. 2004년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가한 주민들의 애끓는 호소가 한국 시민사회를 움직였다. 이듬해 2월 현지 실태조사에 나선 지구촌동포연대(KIN)를 중심으로 그해 5월 만들어진 것이 ‘우토로국제대책회의’다. 배덕호 KIN 사무국장은 “주거권 싸움이자 생존권 싸움이었지만, 무엇보다 잊혀진 역사와의 싸움이었다”며 “그래서 더 힘겨웠다”고 말했다.
우토로 지원을 위한 전 국민 모금운동이 시작됐다. <한겨레21>·문화방송을 비롯한 언론과 아름다운재단 등 시민사회가 앞장섰다. 그에 힘입어 우토로 마을 주민회는 2007년 10월 토지 소유주인 ‘서일본식산’ 쪽과 마을의 절반(3200평·1만579㎡)을 5억엔에 매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해 말엔 한국 국회가 우토로 지원예산 30억원을 확정·의결했다.
우여곡절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다른 동포들과의 형평성’을 언급하며 확보한 예산의 집행을 미뤘다. 일본 정부는 곁눈질하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토지 소유주 쪽은 매맷값을 올리려 안달이었다. 그새 엔화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확보할 수 있는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마침내 2010년 1월 주민회는 모금액을 마중물 삼아 ‘일반재단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을 설립하고, 우토로 동쪽 땅 830평(2744㎡)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한국 정부 지원금 30억원을 관리하는 ‘우토로 일반재단법인’도 이듬해인 2011년 2월 우토로 땅 1150평(3802㎡)을 사들였다. 마을의 3분의 1을 확보한 게다. 그제야 일본 정부도 국토교통성·교토부·우지시 3자로 구성된 ‘주거환경 개선 검토협의회’를 통해 ‘새로운 마을 만들기’를 위한 논의를 급진전시켰다.
한국·일본 사회 모금액 17억원
“생업을 미루고 모금 활동에 전념한 동포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멀리 한국에서 찾아와준 젊은이들의 모습도.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게 생각한다.” 3월20일 회견에서 엄명부 우토로 마을 주민회 부회장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집과 고령자를 위한 복지시설을 지어야 한다”며 “또 우토로에서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한 만큼, 새로운 마을 만들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제대책회의는 ‘우토로 역사기념관 건립’을 위한 잔여 모금액 3억3천만원을 주민회에 전달하는 것으로 7년여 만에 공식 해산했다. 지금까지 한국·일본 시민사회와 재일동포들이 모은 민간 모금액은 약 17억원에 이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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