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린 ‘테드 특강’에서 벤처투자자 닉 해나워가 미국의 소득 불평등 심화현상과 부자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한겨레21 913호
[세계] 글로벌 특강 ‘테드’, 유명 투자자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 강연 “정치적 편향” 이유로 공개하지 않자 네티즌 반발 거세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 ‘글로벌 특강’으로 불리는 ‘테드’(ted.com)가 지향하는 목표다. 1984년 비영리 민간단체 ‘새플링재단’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서 ‘첨단기술(T)·오락(E)·디자인(D)’을 주제로 마련한 회의에서 출발한 ‘테드 특강’은, 점차 주제와 강사의 외연을 넓혀 세계적인 ‘지식 나눔의 장’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아마존닷컴’ 투자자의 짤막한 강연
2009년부터는 특강의 무대를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팜스프링스로 옮겨 1년에 두 차례 연차회의를 열고 있다. 회의를 통해 마련된 짤막한 특강을 담은 1100여 편의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청중을 만나고 있다. 이 밖에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90여 개국에서 자발적으로 조직한 특강 시리즈(이른바 ‘테드x’)를 담은 동영상도 1만2천 건을 넘어섰단다. 테드 특강이 이른바 ‘소셜러닝’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상반기 테드 회의는 지난 2월 말~3월 초 롱비치에서 열렸다. 3월1일 오전 첫 번째 세션에 나선 연사 4명 가운데 벤처투자자 닉 해나워(53)도 끼어 있었다. ‘아마존닷컴’을 비롯한 다수의 벤처업체에 투자해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의 이날 강연의 제목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이었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 심화 현상에 초점을 둔 그의 강연은 5분50초 동안 이어졌다. 내용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핵심만 간추리면 대충 이런 식이다.
“부자의 세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신화에 불과한 주장이다. 1980년 이래 미국 부유층의 소득은 3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세금은 50% 수준으로 줄었다. 앞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자리의 ‘홍수’라도 났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는 소비자와 중산층이 만든다. 부유층 중과세를 통해 얻은 조세수입을 중산층을 성장시킬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중산층과 빈민은 물론 부유층에도 보탬이 되는 최선의 정책이다.”
강연을 마친 해나워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 청중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테드 쪽에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참이 지나서도 해나워의 강연을 담은 동영상은 테드 홈페에지에서 볼 수 없었던 게다. 뒤늦게 시사주간지 <내셔널저널>이 지난 5월16일 인터넷판에서 이런 사실을 전하자 ‘트위터’ 논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곧 <허핑턴포스트>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가 후속 보도를 쏟아냈고, 일부 네티즌은 ‘동영상 공개요구 전자청원’까지 나섰다.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강연 전문
사태가 커지자 테드 쪽에선 성명을 내어 “(해나워의 강연에 대해) 많은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도 지나치게 편향돼 있어,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공개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해나워에게도 따로 전자우편을 보내 “개인적으로 미국의 소득 불평등 심화에 대한 (당신의) 우려에 공감하지만, 주류 언론이 매일 쏟아내는 것과 같은 정치적 편향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드 쪽이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바로 ‘테드 특강’에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인터넷의 속성이다. 이내 해나워의 강연 원고 전문이 인터넷을 떠돌기 시작했다. 첫 보도 다음날인 5월17일엔 아예 강연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해나워의 ‘생각’을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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