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922호
[세계] 1895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미국 6월 평균 기온, 미 대륙의 56% ‘가뭄지역’ 속해 농사 타격… 전 지구적으로도 1880년 이래 사상 4번째 ‘뜨거운 6월’ 등 이상 기후 속출에 미 기상 당국도 최초로 ‘기후변화’ 인정
조짐은 지난겨울부터 제법 뚜렷했다. 우선 강설량이 기록적으로 적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야 할 2월 초부터 곳곳에서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키 대신 골프를 즐겼다. 성급한 이들은 반팔을 입고 조깅을 하기도 했다. 겨우내 쌓인 눈을 녹여야 할 햇살은 일찌감치 대지를 달궜다. 달궈진 대지는 공기를 덥혔고, 기온이 올라가 파종도 일렀다. 농민들은 기록적인 풍작을 예감했으나, 이내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날씨는 뜨거운데,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오래도록 내리지 않았다.
“생산량 30~40% 감소”, 숯덩이된 농심
지난 6월은 기록적인 한 달이었다. <로이터통신>이 7월3일 전한 내용을 종합하면, 6월 한 달 미 전역에서 무려 3215건에 이르는 각종 기상 기록이 동률을 이루거나, 경신됐다. 마지막 일주일은 특히 심했다. 6월25일~7월1일 일주일 동안 세워진 기록이 2171건이다. 통신은 “텍사스주에선 6월에만 모두 237개 기록이 깨지는 등 최악의 이상고온 현상을 보였고, 콜로라도주와 캔자스주에선 각각 226건과 164건의 기록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에선 각각 45℃와 44.4℃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잇따라 갈아치웠다. 6월 한 달 동안 미국의 평균기온은 약 21.8℃를 기록했다. 이는 20세기 평균치보다 약 1.2℃ 높은 수치로, 1895년 미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6월 기온이다.
기록적인 이상고온 현상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왔다. 미 사상 최악으로 꼽을 만한 가뭄 사태로 미국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는 게다.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미 대륙 전체의 평균 강수량은 예년 평균보다 41mm가량 적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지난 7월16일 내놓은 월례 보고서를 보면, 이미 미 대륙의 56%가 7월 들어 공식적으로 ‘가뭄지역’으로 분류된 상태다.
지난 20세기 미국은 두 차례 장기간에 걸친 가뭄을 겪었다. 1930년대 가뭄은 7년 동안 이어지면서, 대평원 지역 등 중서부 곡창지대를 초토화했다. 거대한 먼지폭풍이 사방을 뒤덮은 때였다. 이어 1950년대에도 5년여 가뭄이 이어졌다. NOAA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모두 16차례 발생한 국지적인 가뭄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만 2100억달러 규모란다.
가장 최근에 경험한 극심한 가뭄 사태는 1956년 12월이다. 당시 미 전역의 58%가 가뭄지역으로 분류됐다. 6월 말 현재까지의 상황만으로도, 공식적으로 ‘반세기 만에 최악’인 셈이다. 특히 서부와 대평원 지역, 중서부 등지 곡창지대의 상황이 사뭇 심각하단다.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최근 벌어졌다. 은 지난 7월17일 “장기간 이어지는 가뭄으로 강물이 바닥을 드러낼 기미를 보여, 네브라스카 주정부가 농업용 관개시설 가동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했다”며 “이에 따라 모두 1106개 농가에서 농업용수 사용이 전면 중단됐다”고 전했다.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건 대지만이 아니다. ‘농심’도 숯덩이가 돼가고 있다. 네브라스카주는 아이오와·일리노이주에 이어 미국 제3위의 옥수수 생산지이자, 제4위의 콩 생산지다. 통신은 폴 헤이 미 네브라스카주립대 교수의 말을 따 “전체 농업용수의 90% 정도는 지하수를 이용한 관개시설이어서 아직까지는 타격이 없지만, 가뭄이 지속되면 이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며 “가뭄이 8월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연초에 예측한 잠재생산량의 30~40%가 줄어드는 등 급격한 농업 생산량 감소 사태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했다.
“극한 기상현상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
어디 미국뿐일까? 지구촌 전역이 들끓고 있다. NOAA에 딸린 기후자료센터(NCDC)가 지난 7월16일 내놓은 월례 보고서를 보면, 6월 지구촌의 지표·해수면 평균기온은 20세기 평균치인 15.5℃보다 0.6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지난 6월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사상 4번째 ‘뜨거운 6월’로 기록되게 됐다. NCDC는 자료에서 “지난 6월 지구촌의 지표·해수면 평균기온은 328개월 연속으로 20세기 평균치를 웃돌았다”며 “6월 자료만 놓고 보면, 일시적인 이상저온 현상을 보인 1976년 이래 연속 36번째 평균을 웃도는 뜨거운 6월로 기록됐다”고 전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지난 6월 지구촌의 지표면 온도는 20세기 평균치인 13.3℃보다 1.07℃나 높았다. 역시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6월이다. 특히 지구촌 육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반구의 지표면 평균기온은 지난 4월부터 석 달째 기록적인 이상기온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구촌 해수면 온도는 20세기 평균치인 16.4℃보다 0.4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상관측 이래 사상 10번째로 높은 온도란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기상학자 제프 매스터스는 지난 7월3일 미국의 인터넷 대안매체 <데모크라시나우>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매스터스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인류의 미래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극한 기상현상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제부터라도 그에 대한 과학적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마이클 오펜하이머 미 프린스턴대 교수(지구과학)도 지난 6월29일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최근의 고온현상과 가뭄 등 이상기후와 이로 인한 자연재해는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인류가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 이런 현상을 더 자주, 더 많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지적이 아니어도, 지구촌이 극한 기상현상을 경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 ‘실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미국이 그랬다. 미 국립해양대기청과 전미기상학회(AMS)가 지난 7월11일 공동으로 내놓은 ‘기후적 관점에서 본 2011년 극한 기상현상’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전세계가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내 실체 인정한 미 기상 당국
“잇따르는 이상기후를 자연적인 변수만으로 설명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톰 칼 NOAA 기후국장은 7월11일 보고서 공개와 때를 같이해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캐슬린 설리번 NOAA 부청장도 같은 날 <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2011년은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사상 유례없는 극한 기상현상을 경험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최근의 모든 이상 기상현상은 지구적 차원의 환경 변화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OAA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가 최근 잇따르는 이상 기상현상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명시했다. 미 기상 당국이 ‘기후변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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