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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코도 관절 운동해야지~

등록 2012-08-08 17:36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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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922호
[어디 갔어] VHS 비디오 재생한 초간단 VCR

여름이 되니 놀고 있을 귀신 사다코 걱정이 컸다. 사다코는 이제 누구 집 안방 TV에서 기어나올 수 있으려나. 찾아보니 올해 사다코가 비디오테이프에서 인터넷 동영상으로 갈아탄 일본 영화가 개봉했더라. 네티즌들은 사다코의 배신에 ‘사다코년’이라고 욕을 했지만 사다코가 대출 갈아타듯 동영상계로 진출한 데는 이유가 있다. VCR, 그러니까 VHS 비디오를 더는 보지 않는 세상이 온 거다.

2000년인가 군에서 여름휴가를 받았다. 집에서 못 본 영화나 몰아 보기로 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테이프를 히다치 SVHS 비디오 플레이어에 걸었더니 테이프를 와자작 씹으며 멈춰버렸다. 1992년에 서울 용산 전자상가, 이른바 ‘용팔이’가 100만원을 부르던 것을 현금 80만원인가에 샀던, 일제 밀수품은 그렇게 맛이 갔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버튼이 가득했다. 나중에 ‘초간단’ ‘초간편’ 비디오를 소환하게 되는 저주받은 버튼들이다. 일반 가정용보다 영상편집 기능이 강했다. 기능이 참 많았지만 거의 먹고 마시고 자고 싸는 수준 정도로만 사용했다.

그나마 많이 사용한 기능은 ‘조그셔틀’이었다. 비디오를 보다가 동그란 버튼을 앞뒤로 돌리면, 돌리는 강도에 따라 화면이 천천히 혹은 빠르게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했다. 화면을 잡아주는 화면정지 기능도 겸했다. 조그셔틀로 <영웅본색>에서 저우룬파(주윤발)가 총을 쏘기 전 나쁜 놈 배에서 먼저 피가 튀었다는 충격적 사실을 초 단위로 밝혀냈던 기억이 난다.

일제 밀수품이 씹어버린 테이프를 살려내야 했다. 드라이버로 개복 수술에 들어갔다. 기판을 들어내고 ‘프런트로딩’ 방식이 삼키고 헤드드럼이 짓누른 테이프를 구해냈다. 곧바로 전철을 탔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현금 18만원인가를 주고 소니 초간단 VCR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비디오 시청은 재개됐다. 그 VCR가 지금도 부모님 집 거실, 커다란 LCD TV 옆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놓여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케이블TV가 없을 때, 드라마를 놓친 엄마·아빠들은 밤 9시나 10시쯤 집으로 전화를 했다. “늦는다. 녹화해라.” 사람이 없을 때를 대비한 VCR 간편예약 기능도 발달했다. 공테이프인 줄 알고 드라마를 녹화했다가, 이영애와 신부화장을 한 자기 아내 얼굴이 교차 편집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1983년 프런트로딩 VCR가 나왔을 때, 신문은 기술의 진보를 이렇게 전한다. “종전의 톱로딩 방식과 달리 테이프를 앞에서 삽입함으로써 비디오 데크 위에 TV를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등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요즘 애들은 프런트로딩, 톱로딩을 PS(플레이스테이션)로 이해한다. 나중에는 TV 위나 아래에 VCR를 결합한 일체형 제품도 나왔다. 1994년 삼성전자·금성전자·대우전자 가전 3사 사이에 ‘다이아몬드 헤드’ 경쟁이 붙었다. 다이아몬드를 바른 것도 아닌데. 4헤드, 8헤드, 자동되감기, 2분 만에 되감기, 빨리감기, 16배속, 헤드클리너…. 2000년 들어 DVD가 나오자, VHS 재생 기능과 DVD 재생 기능을 겸한 ‘더블데크’로 행복한 공생을 시도하기도 했다.

파국은 빨리 왔다. 2005년 삼성전자는 VCR 생산을 중단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2011년 VCR 생산을 접었다. 사람들은 VCR 생산 중단보다 VCR를 아직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나. 어쨌든 소니 VCR는 버리지 못한다. 부모님이 하와이 여행 비디오 보자고 하면 뭘로 보냔 말이다. 사다코도 가끔씩 운동 삼아 관절꺾기 좀 해야 하지 않겠나.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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