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미국 국방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이 12일(미국시각)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과 핵실험을 결합해서 본다면 동북아 지역은 물론 미국까지도 위협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했네요. 전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북한이 앞으로 5년 안에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ICBM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했지요. 특히 게이츠 장관은 북한에 핵과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유예)을 요구했습니다.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 고위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구체적인 제안을 한 셈입니다.
북한 미사일 역량에 대한 미국의 이런 판단이 새롭지는 않습니다. 이미 2001년 펴낸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에서 ’북한과 이란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으로 두는 ICBM 기술을 2015년이면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게이츠 장관과 멀린 합참의장도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미국의 접근방식입니다. 임기 절반을 지난 버락 오바마 정부가 새삼스럽게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북한 문제에 큰 비중을 두지 않던 오바마 정부가 우선순위를 울리고 본격적인 해법 모색에 나선 것이지요. 그 방법은 중국을 적극 끌어들여 대화와 협상을 하는 것입니다. 게이츠 장관은 직접적으로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한·중·일 순방을 한 것도 대화 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움직임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군사적 이해와 관련돼 있습니다. 미국의 국방 고위당국자들이 외부 위협을 강조할 때는 대개 군비증강과 연결됩니다. 이번에는 미사일방어(MD) 계획 및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꾀하는 듯합니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연구소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당장 ‘오바마 정부가 삭감한 미사일방어 관련 예산 14억달러를 부활시켜야만 한다’고 했네요.
어쨌든 미국이 이제까지의 대북 ‘전략적 인내’에서 ‘전략적 개입’으로 가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의 분수령이 될 겁니다. 크게 보자면 한반도·동북아 관련 사안들을 놓고 G2가 큰 틀을 짜는 거죠.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은 대남 대화공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세 통의 당국 명의 통지문을 보내,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과 개성공단 실무회담 개최,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정상화를 촉구했습니다. 신년공동사설(1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8일), 아태평화위원회·조선적십자회·경협사무소 명의의 통지문(10일) 등에 이은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번에도 ‘진정성이 없다’ ‘위장 평화공세다’라며 일축했습니다. 북쪽이 완전히 머리를 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는 거죠. 정부는 6자회담 재개 문제에도 가장 소극적입니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 속에 강대국 정치가 부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냉전 시기와 비슷한 모양새이지요. 우리로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 한가운데에 악화한 남북관계 등 한반도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북아 갈등과 남북관계가 악순환하는 구조이지요. 이렇게 시간이 지난다면 한반도 문제는 더 나빠지고 우리의 발언권도 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시민평화포럼 공동주최 새해 대토론회에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네요. 남북관계에서 근본주의적 접근을 바꾸고 관련국과 균형있는 실용외교를 벌이는 것이 그것입니다. 무엇보다 남북 간의 대화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성은 북한만이 아니라 우리 정부에게도 요구됩니다. 이와 관련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현 정부가 정책 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국제정세의 변화, 특히 미국의 대북접근에 변화가 있을 경우나 국민 여론뿐”이라고 했습니다. 정부의 정책을 바꾸려면 시민들의 관심과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민주주의는 안보 관련 사안에서 더 중요합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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