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자가 오랜만에 얼굴을 맞댔으나 서로 얼굴만 붉히고 헤어졌습니다. 어제 끝난 남북 군사실무회담 얘깁니다. 국방부는 오늘 앞으로 북쪽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대화할 수 있다며 대화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북한군도 남쪽이 남북관계 대선을 바라지 않는다며 “이런 조건에서 더이상 상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무회담 내용을 보면 양쪽 다 현안을 풀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진정성과 의지가 부족합니다. 이번 회담의 최대 초점은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다룰 의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북쪽은 이번 회담에서 세 차례 수정안을 냈습니다. 문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또는 ‘쌍방이 도발로 간주되는 모든 군사적 행동을 엄금’) 문제를 함께 다루자는 내용입니다. 북쪽의 주된 관심사는 두 사건보다 뒤쪽에 있는 것이지요. 북쪽은 회담장 철수 직전 천안함 사건은 자신과 무관한 “남쪽의 특대형 모략극”이며 “(연평도 포격을) 남쪽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경위가 분명한 연평도 포격에 대해선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지요.
남쪽은 두 차례 수정안을 냈습니다. 핵심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먼저 다뤄 북쪽의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오면, 차수를 바꿔 북쪽이 제기한 다른 의제를 논의하겠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두 사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처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의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질적으로 고위급 군사회담의 의제를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제한하는 셈입니다. 북쪽을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두 사건의 바탕을 이루는 남북 사이 긴장 상태를 해소하는 문제는 부차적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역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위급 군사회담 등 남북대화에 대한 의지는 북쪽이 더 강해 보입니다. 이번에도 북쪽은 2월 중순에 빨리 고위급 회담을 열자고 했고 남쪽은 2월 말 이후를 제시했습니다. 북쪽이 세 차례 수정안을 낸 것도 나름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될수록 천천히 대화를 하자는 태도를 보입니다. 아쉬울 게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남북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결국 양쪽 다 피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남북 모두 남북관계를 종속변수로 여기는 듯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6자회담 재개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속도와 방식은 달라질 수 있으나 바뀌기 어려운 큰 흐름입니다. 북쪽은 이 흐름을 활용하려고 대남 대화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남쪽은 이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서 대화에 응합니다. 바로 이런 남북의 태도가 기본적 한계입니다.
남북관계 진전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남북관계가 진전돼야 핵 문제 등 다른 현안도 풀기가 쉬워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미국·중국이 조성하는 대화 분위기 속에서 남북관계가 걸림돌이 되는 형국입니다. 우리 정부의 발상 전환과 좀더 적극적인 태도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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