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시사평론가
2012년은 ‘정치의 해’다.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같은 해에 치르게 된다.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권 말 터진 각종 악재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당 쇄신에 시동을 걸었다. 야당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탄생을 필두로 정권 탈환을 위한 본격적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은 <나는 꼼수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앞세워 또다른 정치혁명을 꿈꾸고 있다. ‘논쟁’은 새해 기획으로 격동이 예고되는 2012년을 관통할 열쇳말은 무엇인지 정치 전문가들한테 들어봤다.
‘시장 개혁’이다
변수는 논외로 하자. 북한발 위기로 ‘평화’ 문제가 주되게 부상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제쳐두자. 그건 닥쳐봐야 아는 문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의 한반도 주변 움직임을 볼 때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것 같지도 않다.
오로지 시대 환경과 민심 흐름만을 갖고 살피면 새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할 문제는 ‘시장 개혁’이다.
모두가 안다. 4년여 전의 ‘엠비 돌풍’도 4년여 뒤의 ‘반엠비’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먹고사는 문제다. 4년여 전에는 ‘경제대통령’ 이미지와 ‘성장’ 이데올로기에 현혹돼 기대감을 키웠고, 지금은 그런 미혹에서 깨어나 실망감을 표출한다. 변한 게 없다. 시대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양극화 질곡 속에 놓여 있고, 민심 흐름은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한 건 아니다. 비록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얻은 게 있다. 자각이다. 성장 이데올로기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점만은 확실히 자각했다. 성장이 공생으로 이어지던 시대는 예전에 끝났다는 점만은 뼈아프게 자각했다. 탐욕스런 대자본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는 한 성장은 공생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했다.
이건 학자들이 책상머리에서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 국민이 생활 속에서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의 ‘고통 전담’을 겪으면서 체감한 것이다. 골목시장에서 ‘할인 펀치’를 맞고, 납품시장에서 ‘후려치기’를 당하고, 인력시장에서 ‘서자 취급’을 당하면서 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시장의 이런 야만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통지수만 성장한다는 점을 체감한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노선이고 색깔이고 모두 집어던지고 오로지 유권자 입맛에 맞는 사탕만을 꺼내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예상대로 총선과 대선이 진영대결로 치러진다면 진영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점증한다. 따라서 노선 대신 사탕을 꺼내드는 ‘표’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해도 한계점은 뚜렷할 것이다. ‘시장 개혁’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를 가르는 가장 굵은 구획선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선거 열쇳말로 복지를 주창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의 필요성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선거 구도를 가르는 요인에 초점을 맞춰 살피면 부적합하다. 구도는 차이를 전제하고 대결을 동반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복지는 더이상 선거구도를 가르지 못한다. 복지는 한 입 빨고 옆의 친구에게 넘겨주는 ‘초등학생의 왕사탕’이 되어 버렸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새로운 체제’다
정부 수립 후 한국 정치는 약 25년마다 거대한 정치체제의 변동을 경험해왔다. 정부 수립으로 근대적인 정치체제를 도입한 지 25년 만에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섰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엄청난 피를 흘렸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손으로 정부를 선택하는 민주화를 성취했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엄격하게 말하면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적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를 추동하여야 할 정당은 그 스스로가 오너에 의해 지배되는 사당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는 사당적 구조를 가진 정당에 의해 다시 지배되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법부 역시 피라미드의 상부가 하부를 지배하는 관료적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87년 체제에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무한한 자기복제가 이루어졌다. 정치는 물론 사회·경제 영역으로. 대표적으로 소수의 대기업이 다수의 중소기업을 하청업체로 거느리는 계열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생산의 이윤을 독점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점점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 언론 역시 소수의 언론재벌이 여론을 독점하고 왜곡했으며, 급기야는 자사의 이익을 지지하는 것이 마치 여론인 양 포장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87년 체제가 만들어진 지 다시 25년이 지났고, 과두적 민주주의도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균열은 언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무장한 시민들이 더이상 소수의 언론재벌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시작했다. 그동안 끈질기게 한국 정치의 숨통을 눌러대던 북풍의 프레임도, 포퓰리즘의 프레임도 더는 다수의 시민들을 주눅들게 하지 못한다. 다수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공론의 장에 참여하고 또 진정한 여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2013년 체제’의 정신이다. 소수의 당 지도부, 언론재벌, 대기업이 대한민국의 정치와 여론, 그리고 경제적 부를 지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다수인 시민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다. 독과점적인 지대를 걷어내고 각자가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다.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사회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정신이다.
결국 2012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어느 후보와 정당이 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적합한지, 어느 후보와 정당이 더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이를 실현해 갈 비전이 있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
‘생존’이다
새해가 밝았다. 으레 새해가 되면 좋은 얘기를 하기 마련인데 올해는 예외가 될 것 같다. 우선 세계경제 상황을 보면 너무 좋지 않다. 경제위기의 발원지인 유럽의 재정 상태가 도무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이른바 피그스(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국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그 금액이 무려 300조원에 달한다. 이때를 어떻게든 넘긴다 하더라도 경제위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더욱이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원년이다. 모든 쌍무협정이 어떤 나라에는 이득만 주고 다른 나라에는 손해만 주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나라에도 이득과 손해 되는 측면이 모두 있지만 한-미 에프티에이의 경우 이득은 재벌들에 돌아가고 손해는 서민들이 모두 짊어지게 생겼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더욱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고 중소기업이나 서민 모두 저마다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우리에게 위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남북관계 역시 안갯속이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안착하는가 하는 부분이 아직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여기에다 한반도를 포함해서 주변 4강이 모두 정권교체가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우리에겐 중요한 사안으로 대두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존을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권교체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12월에 있을 대선 역시 우리에겐 일종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지난 4년이 40년 정도로 느껴질 만큼 이명박 정권은 갖가지 측면에서 정말 다양한 억압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만 폈고, 미네르바 사건이나 <피디수첩>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로는 철저히 봉쇄한 채 ‘소통’만을 외쳐왔다. 이 정도쯤 되면 국민들은 사기당한 기분이 들 법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절대 사기당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또 잘못된 선택을 하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삶은 정말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은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종합해보면 이래저래 올해의 화두, 그러니까 열쇳말은 생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올해 우리는 꼭 살아남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의 현명함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꼭 생존하자. 그래서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존을 걱정하는 2013년은 만들지 말자.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노선이고 색깔이고 모두 집어던지고 오로지 유권자 입맛에 맞는 사탕만을 꺼내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예상대로 총선과 대선이 진영대결로 치러진다면 진영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점증한다. 따라서 노선 대신 사탕을 꺼내드는 ‘표’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해도 한계점은 뚜렷할 것이다. ‘시장 개혁’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를 가르는 가장 굵은 구획선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선거 열쇳말로 복지를 주창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의 필요성이야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선거 구도를 가르는 요인에 초점을 맞춰 살피면 부적합하다. 구도는 차이를 전제하고 대결을 동반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복지는 더이상 선거구도를 가르지 못한다. 복지는 한 입 빨고 옆의 친구에게 넘겨주는 ‘초등학생의 왕사탕’이 되어 버렸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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