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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에 따른 사고 예방 위해
학내 ‘술판’ 제한돼야 마땅하다 천성수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 한국과 미국 대학생의 음주와 폭음에 대한 비교연구(2008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 4명 가운데 3명가량이 폭음자로 분류된다. 그중 절반이 상습폭음자다. 미국 대학생의 약 2배 수준이다. 새 학기가 되면 대학마다 음주로 인한 인명사고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해마다 여러 대학생이 폭음으로 사망하며,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많은 학생들이 그로 인해 응급실로 실려 간다. 폭음은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대학생 2명 중 1명이 음주 학생들 때문에 피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성적인 피해를 비롯해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측면까지 피해 범위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대학교 안 음주행위를 금지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조처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술을 파는 장소와 술을 마시는 장소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으며, 한 사람이 한 번에 살 수 있는 양도 정해져 있다. 술을 사러 온 사람의 연령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취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더는 술을 팔지 않는다. 물론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주류 판매자는 과중한 벌금과 함께 판매면허가 취소되기도 한다. 술 판매를 거절하였음에도 취한 사람이 술을 더 구입하려고 소란을 피우면 이 역시 범법행위로 규정돼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처럼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원천적으로 공공장소나 캠퍼스 내에서의 음주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양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우리나라의 알코올 정책이 얼마나 관대한지 짐작할 수 있다. 선택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러나 한쪽의 선택이 다른 쪽에게 불편감이나 생명의 위협을 초래한다면 그 선택은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원칙이다. 학내 음주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권리, 그리고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선택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논쟁의 핵심은 ‘선택’에 있다. 캠퍼스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것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러한 대책이 대학생들의 폭음이나 부적절한 음주 문제들을 감소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 음주 문제에 대한 대책이 부족한 대학의 폭음자 비율은 70%이나,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노력한 대학의 경우는 45%로 현저히 떨어졌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음주 당사자뿐 아니라 비음주자도 타인의 음주 행위로 인한 원치 않는 피해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는 점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개인의 자유선택에 반하는 알코올 규제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는 술이 더 이상 ‘일반상품’이 아니며, 음주 피해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시민의 권리를 더 소중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대학 캠퍼스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금지 조처는 대학생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특별히 존중해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의 시작은 지성의 상아탑인 대학의 캠퍼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통제 위한 구시대적 발상
대학 안 금주는 과도한 규제
단속 실효성 있을지도 의문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공연기획자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는 ‘명랑’ 이었다. 명랑한 사회, 명랑한 국민, 명랑 만화와 명랑 소설에 이르기까지 가히 국가적 캠페인이라 할 만큼 사회 전체가 ‘명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른바 ‘명랑’ 캠페인은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사실상 당대의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국민개조 프로그램이었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다>의 저자 소래섭 울산대 교수에 따르면, 이 시대 총독부는 조선을 식민지 체제에 맞게 개편하고 조선인들의 신체와 두뇌를 통제하려 본격적으로 명랑화 작업에 착수했으며, (명랑이란) 당대를 지배했던 몇 가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지거나 발견된 말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식민치하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명랑’이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 시절까지 면면히 이어지면서 쓰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유서 깊고도 음흉한 ‘명랑’이 어느 순간 새로운 단어로 대체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건강’이었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 건강한 사고, 건강한 삶…. 명랑이 식민치하 조선인들의 신체와 두뇌를 통제하기 위한 국민개조 프로그램이었듯, ‘건강’ 역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과 육체를 튼튼하게 만들자는 순진무구하며 사심 없는 캠페인은 당연히 아니었다. ‘건강’은 때때로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통치하는 데 사용됐으며, 정신과 육체를 교육시키는 데 활용되어 왔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의 반대말은 아픈 사회가 되고, 아픈 사회는 불평과 불만, 반대와 거부로 가득 차 단호하고 과감하게 ‘수술’해야 하는 패악으로 치부되었다. 때아니게 ‘명랑’과 ‘건강’을 떠올리는 까닭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학 내 음주금지 법안’의 입법 추진의 배경이 다름 아닌 ‘건강한 대한민국 만든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진행되고 있어서다. 결국 음주금지 법안은 건강사회 구현의 행동강령쯤 되는 셈이다. 음주금지 법안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에서부터, ‘건강상의 위해뿐 아니라 주취폭력 등 음주 폐해를 줄일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우리나라 성인의 31%가 일주일에 소주 6잔을 마시는 ‘폭음자’로 세계 평균 11%보다 월등히 높다는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국가기관의 시름이 과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주취자에 대한 처벌은 이미 법제화되어 있는데도 주취폭력 등을 내세우며 과도하게 학내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 안 영리시설에 대해서는 또 음주를 허용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예외조항 등을 지적하는 것은 아마 ‘건강’하지 못한 사고가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드넓고 수많은 대학 캠퍼스 어느 구석에서 술 먹는 학생들을 어떻게, 누가 잡아내 처벌할 것인지를 묻는 것도 불경하다. 그러니 이 땅의 대학생들이여 명랑하라, 그리고 건강하라. 시키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정해진 대로 반대하지 말고 부정하지도 불평하지도 마라. 그것이 이 나라가 규정하는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명랑시민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부디 잊지 마시길.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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