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농지훼손법’ 이대로 둘 것인가

등록 2021-06-21 14:36수정 2021-06-22 02:10

‘부동산, 무엇이 문제인가’ 연쇄기고 _3

[왜냐면] 이무진ㅣ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한 방송에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연천군 농지 투기 및 명의 신탁 의혹을 보도하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땅 투기 의혹이 있는 의원 12명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사회지도층의 농지 또는 땅 투기에 분노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넓게 들여다보면 이는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농지 또는 토지를 이용한 이윤 창출이 가능하고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엘에이치(LH) 사태에서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개발예정지에서 상대적으로 싼 농지를 구입해 이윤을 극대화한 데 따른 것이다. 궁금해진다. 부당한 방법으로의 이윤 추구에 대한 분노에 더해 혹시 이윤 창출 수단으로 활용한 농지 구입의 부당성에 대한 분노도 있을까. 많지 않으리라 판단된다. 농민이 아닌 누구나 농지 소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지는 농민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료 포함 식량 자급이 21%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 특히나 농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물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9년간 여의도 면적의 462배의 농지가 사라졌고 이 중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이 30%나 차지한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19년 기준 밀은 0.7%, 옥수수는 3.5%의 자급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세계곡물지수는 8개월째 상승하고 있어 80%를 수입해야 하는 한국의 식탁물가는 요동치고 있고 기후위기에 의한 생산량 감소 또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농지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다른 나라의 농지 정책을 살펴보면 일본은 경작자(농민) 중심의 농지 소유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농지의 92%가 절대농지(진흥지역)이다. 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유럽 선진국도 경작자 중심, 가족농 중심의 농지 소유를 강조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농지는 국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공급원이면서 자연, 문화, 환경 등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 훼손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농지를 보전하는 것이다.

우리도 헌법(제121조)엔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농지법은 16개의 예외규정을 만들어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현재의 농가 고령화율과 영농 승계율을 고려해보면 약 15년 뒤 우리나라 전체 농지의 84%가 비농민의 것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상속·이농 등에 따른 농지 소유 예외조항이 향후 경자유전 원칙을 합법적으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여기에 암암리에 진행 중인 농지 투기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엘에이치 사태에서 보듯 어쩌면 머지않아 농지는 돈 많은 투기꾼들만 소유하고 농민은 소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에 토지공개념, 농지공개념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토지나 농지를 통한 이윤 창출을 막아내고 그 이용을 농민만이 농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전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면 일부러 농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농지법 제3조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에는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미 ‘농지훼손법’이라고 조롱받는 농지법도 농지공개념의 내용을 기본 이념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농지를 투기의 대상에서 식량 생산과 국토의 환경 보전을 위한 물적 토대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고 그 합의를 바탕으로 좀 더 강한 농지보전 대책을 담은 농지법 개정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로 국회와 정부에서 논의되길 기대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