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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흡연권이 인권인가…담배 배우는 군대로 회귀 안돼

등록 2021-06-21 14:39수정 2021-06-22 02:09

[왜냐면]  서홍관 ㅣ 국립암센터 원장

육군은 5주간의 훈련소 신병교육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훈련병의 흡연을 인권 차원에서 허용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육군 신병교육지침서는 ‘금연을 적극 권장한다’면서도 ‘장성급 지휘관 판단 아래’ 흡연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논산 육군훈련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병교육대는 금연을 실시하고 있으나 일부 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훈련병의 흡연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흡연이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흡연을 허용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흡연권이 인권의 하나인가라고 물었을 때 누가 쉽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흡연권은 법에 명시된 바도 없고 혐연권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금연구역을 정하는 것이 위헌인지를 가리는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흡연권도 인정될 수 있으나 담배를 싫어할 혐연권과 충돌한다면 혐연권이 우선시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놀랍게도 담배회사들은 이 판결을 근거로 헌법재판소가 흡연권을 인정했다고 주장해왔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담배회사들은 이후로도 끊임없이 흡연권을 이용해서 금연정책을 방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금연구역을 확대할 때면 흡연자에게 흡연권을 허용해달라고 주장하거나,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을 때는 흡연자들도 끔찍한 그림을 안 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연정책 찬반토론 때 담배회사가 섭외해서 토론자로 나온 법대 교수는 흡연자의 권리를 주장하여 교묘하게 금연정책을 비판했다. 훗날 필자는 그 교수가 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담배는 60여종의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이 섞여 있는 건강 유해상품이다. 또한 담배에 들어 있는 니코틴은 헤로인이나 코카인보다 강력한 중독성 물질이다. 흡연은 약 30여종의 암을 일으키고, 뇌혈관질환과 심근경색을 일으키고, 폐를 손상시킨다. 그 결과 담배는 1년에 전세계에서는 무려 800만명을, 우리나라에서만 6만2천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마디로 흡연은 자해행위이며, 서서히 하는 자살행위이다. 흡연권을 인권으로 본다는 것은 국방부가 자해할 권리도 인권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마약을 인권 차원에서 허용하자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과거에 군대는 흡연자 양성소였다. 병사들에게 무료로 담배를 나누어주었는데 비흡연자에게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많은 비흡연자들은 흡연자가 되고, 흡연자는 골초가 되어 돌아왔다. 이후 금연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공급하지 말라는 따가운 여론을 의식해서 무상담배는 사라졌지만, 시중 가격의 5분의 1에 불과한 면세담배를 공급하였기 때문에 국방부는 여전히 흡연 장려정책을 편 셈이다. 국방부에서 군 면세담배를 없앤 것은 2009년에 이르러서다.

1999년만 해도 72%에 이르던 장병의 흡연율은 20년 만에 40.7%로 감소했다. 여기에는 물론 사회 전반적인 금연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신병훈련소에서 금연을 시행하고, 각급 부대에서 금연 지원을 하는 등 국방부가 발 벗고 나선 점도 중요했다.

그런데 육군이 금연 분위기를 역행해서 흡연 허용을 검토한다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훈련소에서 흡연을 허용하면 좋아할 곳은 딱 하나다. 바로 담배회사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이 훈련소에서 금연시킨다는 말을 듣고, 자녀의 인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할 부모가 몇이나 될 것인가. 이제 국방부는 담배회사가 좋아할 정책을 펼 것인지, 장병들의 건강을 위하고 그 부모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정책을 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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