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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피해를 특혜로 둔갑시키는 나라의 미래

등록 2021-06-30 19:09수정 2021-07-01 02:07

[왜냐면] 정규옥ㅣ시국사건관련임용제외교원 원상회복추진위원장

요즘, 우리가 누리는 삶은 과거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더 이상 광주시민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늘 광주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5·18과 우리 현대사는 그냥 과거가 아니고 분명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광주항쟁은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커다란 질문이기도 했다. 수많은 ‘시위’와 ‘죽음’은 때로 군부정권에 저항하라는 양심의 소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청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침묵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가혹하고 슬픈 현실이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광주의 진상을 밝히라고, 군사정권에 반대한다고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던 수많은 청춘들은 보수언론과 검찰, 공안정권에 의해 ‘좌익용공’이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생때같은 젊음들이 대학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히고, 다치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수많은 청춘들이 겪은 고통과 번민은 대한민국의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정권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지금 공기처럼 누리는 언론 자유와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선거권 등 어느 하나도 우연히 다가온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80년대 초중반 국립사범대학을 다니던 자신도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침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졸업 뒤 당연 임용 대상자였음에도 공안기관들의 조직적인 방해를 받아 교사 임용에서 제외되었다.

10여년 교단에 설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임용제외자들은 1999~2001년 ‘시국사건관련교원임용제외자채용에관한특별법’ 제개정을 통해 간신히 신규채용될 수 있었다. 임용제외 기간 동안 못 받은 임금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었다. 임용제외자들은 그 기간의 호봉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여 동기들의 70%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람 하나로 또다시 20여년을 버티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힘겹게 살고 있는 모습과,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권리를 박탈당해 30여년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이 너무도 유사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실제 2004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서 시국관련임용제외교사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국가권력 피해자로 인정까지 해놓고도 피해보상 관련 규정이 법적으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피해보상을 위해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되었으나 몇달째 국회 상임위에 멈춰 있다.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은 이 법으로 민주화운동 교사들이 특혜를 누리려 한다면서 세금도둑 취급을 하며 공격하고 있다. 30여년 피눈물이 특혜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피해는 두고라도, 앞으로의 호봉 경력이라도 인정되길 바라는 제자리 돌림을 엄청난 특혜라고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모욕이었다. 백발 교사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두번 죽이는 일부 언론을 보며 젊은 시절과는 또 다른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그럼 80년대 광주학살에 대해 침묵했어야 하는가? 그리하여, 군부정권이 지금까지 지속되었어야 하는가? 당시 빨갱이라고 공격하며 군부독재정권 비호에 앞장섰던 그들이 또다시 특혜라는 얼토당토아니한 프레임을 씌워 피해자를 모욕해도 되는가?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치권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것인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피해를 강요하거나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그런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지킬 어떤 가치도 없기에 개인주의와 각자도생의 비극적 결과만 남을 뿐이다. 여야나 보수·진보를 떠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고 조롱하면서 광주정신을 입에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윈스턴 처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과거를 잊은 국가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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