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에서 1954년 6월27일 핵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한 2년 뒤 영국은 셀라필드에 콜더홀 원전(60㎿e)을 설치하여 1956년 8월27일 세계 최초로 상업운전을 개시하였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원전 건설을 활발히 시작하였고 1957년 7월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핵사찰기구(IAEA)를 설립하여 핵의 군사적 전용 관리에 나섰다.
반세기도 전의 일이다. 원전 도입 초기에 안전할 것 같았지만 막상 1979년 스리마일섬,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이 발생하자 세계적으로 원전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 메르켈 총리는 윤리위원회에서 도출된 권고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 논란은 제외하더라도 현재 세대가 남긴 핵폐기물 관리를 후세 대대로 전가할 수는 없으며 언제든지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핵의 평화적 이용은 진실성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윤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패전국 독일의 파격적인 탈원전 결정은 전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2022년 완전정지를 목표로 변함없이 추진 중이다.
독일의 결정은 국가안보가 핵으로 지배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1945년 나가사키 원폭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핵전쟁 사례는 없다. 실제로 핵전쟁이 발발하면 방사능의 지구적 확산과 가공할 환경 파괴로 모두가 살 수 없게 되므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그러므로 현재 개발 중인 북핵보다 북의 장사정포가 훨씬 위협적이라는 주장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또한 곳곳에 널려 있는 핵시설 방어능력도 갖추지 않고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핵안보 논리는 궁색해진다. 그럼에도 동북아 지역에는 핵확산 관련 무의미한 경쟁과 긴장감이 팽배하다.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인 동북아에서 중국은 50기(47GWe)를 가동 중이고 14기를 건설 중이며, 서해안(황해) 지역에 100기까지 계획하고 있다. 최근 광둥성의 타이산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설되었다는 보도와 폐쇄적인 운영은 심히 우려된다. 한국은 24기(23GWe)를 가동하며 4기를 건설 중이나 잦은 운영상 문제가 노출되어왔고, 최근 월성원전에서 방사능이 지하 누설된 사실로 물의를 일으켜 조사를 받고 있다. 원전 비중은 줄어들겠지만 핵잠수함, 파이로프로세싱, 소형원자로, 고속로, 핵융합 등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분야에 혈세 수십조원을 낭비하기 위해 몰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시켜 경주 감포에 재처리시설 부지까지 확보한 상황이다. 재처리시설에서는 많은 방사능이 배출되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경우,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모두 정지되었다가 최근 7개 원전을 재가동시켰다. 수백조원의 사고 비용에 더해 60조원을 원전 재가동을 위해 투입하며 마치 지진대 위에서 곡예 운전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까지 원전 50여기를 운영하며 핵무기 6000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재처리로 확보하였다. 일본 원전 재가동은 전력 수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천문학적인 핵재처리 비용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고선 주변국 반대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까지 결정하였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핵물질이 밀집된 원전과 핵시설에서 계속 배출, 누적되면 어느 시점에 동북아 지역은 거대한 방사능 오염지역이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인구 밀집지역에 핵시설이 이처럼 밀집될 타당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2017년 6월19일 고리 1호기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올해로 4주년이 되었다. 이 역사적 선언은 군사 목적을 평화로 위장한 구태와 비윤리성을 버리고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위해 내딛고자 한 소중한 첫걸음이었다. 탈원전과 비핵화만이 인구 밀집지역인 동북아에서 파괴의 상징인 핵으로부터 지구 환경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마침 지난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 비핵화에 동의하였다. 이는 북의 비핵화와 함께 남의 비핵화도 해당되며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으로 동북아에서 비핵화 평화외교를 주도할 수 있는 중요한 리더국으로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