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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에브리타임 ‘혐오 손절’ 아직도 안했어?

등록 2021-07-12 17:30수정 2021-07-14 16:10

‘대학 공론장의 미래’ 연쇄기고 _1

[왜냐면] 윤김진서 | 대학생 공동체 ‘유니브페미’ 대표·대학 4년

“학교에 가지 못하니까 에브리타임에서 사람들 댓글 보면서 학교 분위기를 파악해요. 에브리타임 말고는 같은 학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없으니까.”

세번째 비대면 학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학교의 분위기나 여론을 만드는 곳은 더 이상 오프라인 캠퍼스가 아니다. 캠퍼스를 밟아본 적 없는 20, 21학번 신입생들은 학교생활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같은 학교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엿보기 위해,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대표적인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은 코로나 시대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공론장이다. 특히 해당 대학에 다니는 사람만이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학생이 에브리타임의 게시글과 댓글을 주류 여론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기서 만들어진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 또한 많다.

이 피로감은 낯선 것이 아니다. 2016년에는 에브리타임의 차별적인 문화를 아카이빙하는 ‘**대학교 남학생들의 사상과 가치관’ 에스엔에스(SNS) 계정들이 있었고, 2018년에는 총여학생회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를 향한 혐오 섞인 게시글을 고발하는 자보가 붙었다. 온라인이 대학의 모든 공간을 대체한 지금까지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몇년 전 고발되었던 것과 똑같은 혐오와 차별이 가득하다.

작년 초, 엔(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에브리타임에는 2차 가해와 여성 혐오성 게시글이 올라왔다. 대학 안팎의 성평등·여성주의 단체와 700명이 넘는 개인이 연명한 ‘커뮤니티 윤리규정 마련 요구’에 에브리타임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최근 카카오가 증오 발언 근절을 위한 원칙을 세우고 운영정책을 변경한 것과는 사뭇 비교가 된다. 반면 대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인 에브리타임은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방관하며 대학에 차별을 퍼뜨리는 선동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용규칙 첫 문장에 “누구나 기분 좋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지향하겠다고 적어두었지만 사실상 들이는 노력은 없다.

에브리타임이 도입한 신고 누적에 따른 자동 삭제 시스템은 커뮤니티 내의 다수 의견만 통과시키고 소수 의견은 검열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도 삭제되지 않는 커뮤니티에서 여성주의 동아리 회원 모집 글은 3분이면 삭제된다. ‘대학을 다니는 페미니스트면 계정 정지는 한번씩 겪어봐야 한다’며 농담을 하지만, 신고 수가 많아져 계정이 정지되고 게시글도 댓글도 달 수 없게 되었을 때 느꼈던 ‘나의 자리가 잘려나간 감각’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론장을 지향한다면 일단 모두에게 입장할 자유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동 삭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환경과 방식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대안적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작년 8월, 유니브페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450개가 넘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의 혐오표현을 고발했다. 에브리타임은 방심위로부터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받고 이용규칙을 개정했지만, 정보통신 심의규정을 기계적으로 베껴 오거나 정치·사회 관련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는 항목을 추가했을 뿐이다. 에브리타임은 평등한 공론장을 구축하기 위해 명확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이용규칙 중 금지 행위에 혐오표현을 명시하고 이용규칙 위반에 따른 규제 방식과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이는 에브리타임이 혐오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너른 선언이다. 둘째, 혐오표현의 정의와 해악부터 공론장이 혐오표현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이용규칙을 뒷받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고 누적 자동 삭제 시스템을 대신해 혐오표현을 필터링하고 블라인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제도적 변화는 결국 사용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단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면서 혐오표현은 금지되어 있다는 알림이 뜬다면 어떨까? 커뮤니티에 접속했더니 혐오표현을 설명하는 가이드라인이 팝업으로 뜬다면? 새로운 이용규칙과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혐오나 차별 없이 토론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21학번 신입생의 바람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제 에브리타임은 어느 쪽에 설지 결정해야 한다. 미래가 없는 ‘차별 코인’을 탈 것인가, 평등이라는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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