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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택배노동자와 마르크스의 착취론

등록 2021-07-19 18:59수정 2021-07-20 02:38

[왜냐면] 박현웅

미국 데니슨대 경제학과 부교수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오는 산재 사망과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사건 소식들은 정의와 공정에 더욱 민감해진 우리 사회에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윤의 원천을 노동 착취로 본 카를 마르크스의 착취론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부가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부가가치 전부를 임금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임금은 그보다 낮게 결정되고 그 차이를 기업이 이윤으로 가져간다. 노동자가 일한 노동시간 중 임금에 해당되는 부분을 필요노동시간이라고 한다. 노동자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기 위한 임금에 해당된다는 의미에서다. 한편 노동자가 일한 노동시간 중 그 나머지는 잉여노동시간이라고 하고, 그에 대응하는 부가가치 부분을 잉여가치라고 한다. 자신이 일한 총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부가가치 전부를 가져가는 대신, 그보다 적은 양의 필요노동시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임금으로 가져간다는 의미에서 노동자들은 착취를 당하는 것이고 바로 이로부터 이윤의 원천은 노동 착취라는 명제가 탄생한다. 이렇게 봤을 때 전체 노동시간에서 잉여노동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늘려 착취의 정도, 착취율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필요노동시간이 고정되었을 경우 노동시간 자체를 늘리면 착취율이 증가한다. 노동이 가치의 원천임을 직감한 자본가들은 항상 과도한 근로시간을 부과해왔다. 그렇지만 이 방식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 법정 근로시간제뿐만 아니라 하루 24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노동강도를 높임으로써 극복 가능하다. 컨베이어벨트를 두배의 속도로 돌리면 생산되는 제품의 양이 두배가 되는 것처럼 노동강도를 높이면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쿠팡의 경우 시간당 생산량 목표치를 설정하고 조금이라도 미달되는 분류원을 향해 속도를 더 높이라고 전체 방송을 한다. 배송기사는 평가를 거쳐 계약 기간이 순차적으로 연장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살인적 강도의 노동을 하게 된다.

착취율을 높이는 세번째 방법은 총 노동시간 중 필요노동시간에 해당하는 부분을 줄이고 그에 따라 임금을 낮추는 것이다. (임금에는 급여뿐만 아니라 모든 복리후생비가 포함되는 것으로 보자.) 자본가들이 급여 이외의 직간접 인건비를 낮춰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은 파견, 용역, 도급 등 고용 형태를 다양화하면서 용이해졌다. 이러한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원청 기업은 4대보험, 안전시설, 노조와의 교섭 등 노동법이 부과하는 의무와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다. 특수고용직이나 비정규직은 업종의 특성,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이유로 정당화되어 왔지만 본질적으로는 근로자성을 제거해 필요노동시간 감소를 통해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쿠팡의 사례에서도 봤듯이 자발적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적 의미의 착취를 강화하는 최적의 제도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부과하는 한편 사용자로서의 의무와 비용은 회피하려는 경향을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일관되게 보여왔다. 이윤은 노동 착취를 통해서만 창출되는 한편 자본가들은 이윤극대화에 실패하면 경쟁에서 낙오하기 때문이다. 결국 착취의 주체는 자본가 개인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구조이며, 구조는 맹목적이기 때문에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자본론> 1권). 이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새삼 귀 기울여야 할 마르크스의 메시지일 것이다.

택배회사가 제공하는 앱을 통해 분 단위로 체크되며 일하는 택배기사가 자영업자인지 근로자인지, 택배회사는 그 사용자인지 아닌지, 학계와 언론에서 논쟁을 하고 법원에서 법리 공방을 하는 모습을 후대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중세 어느 종교회의에서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는 걸 들었을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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