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태호 ㅣ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이석기 전 국회의원이 8년 가까이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시절 형법상 내란선동죄,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죄 등으로 총 9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는 사면이나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그동안 그에게 부과된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여야 정당, 그리고 사법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정말로 그가 9년8개월이나 되는 형기를 다 채워야 할 만큼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그를 내보내야 하지 않는가.
그가 석방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란선동죄를 적용해 그에게 부과된 형벌이 그가 유발한 위험에 비해 과도하고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에게 내란음모죄를 적용하고자 했지만 입증하지 못했다. ‘아르오’(RO)라는 비밀결사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피의사실을 공표했지만, 아르오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내란선동죄를 확정했는데, 이전까지 이런 죄목으로 이렇게 중한 형을 언도한 사례가 없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대법원은 당시 내란선동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음모 행위와는 별개로, 소망을 이루자고 선동한 것이 ‘청중의 마음속에 범행 결심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음모나 조직 없이도 청중의 마음속에 내란에 해당하는 범행을 결심하도록 유발할 위험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 논란이 일었다. 그런 위험을 입증하여 처벌하려면 매우 엄격하고 분명한 근거와 기준을 적용하는데, 그런 입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이석기 전 의원의 사례를 제외한 다른 내란선동죄 수사에서는 잇달아 불기소 혹은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예를 들어 태극기 집회 주동자들이 “군대여 일어나라”며 사실상 촛불집회에 군의 개입을 호소한 것에 대해 내란선동죄로 고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때 <조선일보>는 “당시 태극기 집회 관계자들 주장이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 누구도 계엄령이 선포되거나 군대가 일어날 것으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외마디 소리 같은 구호들을 갖고 ‘내란선동'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을 붙여 수사한다는 것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했고, 경찰도 결국은 비슷한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태극기 부대의 이른바 ‘내란선동’ 혐의와 굳이 이석기 전 의원의 ‘청중의 마음속에 범행 결심을 유발할 위험’을 비교하자면 어느 쪽 위험이 더 컸던 걸까. 일어날 가능성을 알 수 없는 전면전 상황을 상정하고, 그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은 자유토론을 벌인 이 전 의원 쪽과 당시 실제로 계엄 문건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된 기무사와 정권을 상대로 “군대여 일어나라”고 광장에서 외친 쪽 중 누구의 위험이 더 중했던 걸까.
다른 사례도 있다. 이른바 ‘통진당 사건’으로 유야무야된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의 ‘대국민 심리전’을 지시하고 실행한 이들은 과연 어떤 형량을 선고받았는가? ‘심리전’은 군사작전이다. 그들이 진행한 것이 ‘사이버 공격’에만 국한되었던 것도 아니다. 이 군사행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비밀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은 그 자체로도 국헌 문란 행위 중에서도 중한 범죄에 해당할 터인데, 그들은 과연 몇년형을 언도받았던가.
이 모든 논란거리를 다 제쳐 두더라도 그는 이미 석방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10년에 가까운 중형의 80% 이상을 이미 복역해 통상적으로 가석방을 허용할 수 있는 기간을 모두 채웠다. 이석기 전 의원이 감옥에 더 있어야 하는 이유가 정말로 ‘북한과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내란을 꾀할 위험 때문인가, 아니면 그가 풀려날 경우 일어날 정치적 논란에 대한 부담 때문인가. 지난 8년간 그 정치적 부담 때문에 너무 많은 부당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를 석방하는 것은 정치적 고려나 예외 조치가 아니다. 정의다. 그를 이대로 놔두는 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불의한 정치적 고려다. 이런 배제와 혐오의 정치야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