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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국방부의 사과, 또 사과, 그리고 또 사과

등록 2021-07-28 16:36수정 2021-07-29 02:35

[왜냐면]
이세정 전 경기도 복지여성실장

경기도 재직 때 주한미군 장병 대상 한국 역사·문화 교육용 비디오 제작에 필요한 영상자료 수집을 위해 미국 워싱턴 디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기념관’에 갔을 때 서부지역에서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이 나와 동행했던 정복 차림의 미군 영관급 장교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왔다. 미국 청소년들의 군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두터운지 느낀 순간이었다.

최근 육·공·해군 할 것 없이 군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군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고 있다.

몇달 전부터 공개된 휴가 복귀 후 격리된 병사들의 식사 사진을 보니 이 나라에서 제공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40년 전 필자가 군복무 중 유행성 각결막염에 걸려 보름여간 격리된 때 제공받았던 음식이 그보단 나았다. 인생의 황금기에 대가 없이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에게 충분한 분량과 영양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더더욱 격리된 병사는 휴가 때 자유를 만끽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격리상황에서 우울감과, 혹시 감염이라도 됐다면 부대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보살핌과 충분한 급식이 이루어져야 했다.

공군 여부사관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성추행 사건은 몇몇 직속 상사와 군 사법조직이 지휘관과 핵심 간부들이 받을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저지른 일탈행위에서 비롯됐다. 오히려 군 내부 윤리와 규율이 허술함을 외부에 알려준 꼴이 됐다. 직속 상사, 지휘관, 사법당국, 공군 양성평등센터 중 어느 한 명이라도 피해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해결하려 했다면 피해자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의 부모가 부대를 직접 찾아가 처벌과 대책을 요구했는데도 규정대로 사건처리를 하지 않은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그나마 뒤늦게 조치한 것이 당사자를 타 부대로 전출한 것인데, 이 부대원들은 한술 더 떠 관심간부 취급을 하며 냉대와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국민의 군대라기보다는 폭력집단에 가깝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역만리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청해부대 장병 301명 중 90%에 이르는 27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에는 할 말을 잃는다. 부모가 객지에 나가 있는 자녀를 더 걱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주한미군이 일찌감치 해외 파병 중인 미군들에게 백신을 공급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해양항만과장 재직 때 평택항에서 무역선 내부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선원 숙소와 통로가 극히 협소하고 환기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습도와 온도가 높아 호흡하며 장기간 배 안에 머무르는 것이 기적일 정도라고 느꼈다. 문무대왕함도 감염병이 생기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취약한 환경이라고 한다. 4월 국내 장병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국외에 파병 중인 장병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하지 못한 것은 군의 큰 실책이다.

군은 국토방위뿐만 아니라 재난이 있을 때마다 구슬땀을 흘리며 재난극복에 앞장서고 헌혈에 동참하는 등 늘 국민의 곁에 있어왔다. 국민과의 유대는 군대 정당성의 뿌리이다. 이번 사건들로 국방부는 세차례의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군 경영쇄신을 위한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했다. 이번에도 사과와 다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절박한 심정으로 실효적 대책을 수립하고 철저하게 실천하여 진정한 국가의 수호자, ‘국민행복의 사자(使者)’로서의 명예와 위상을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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