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태 ㅣ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2년 전 진보와 보수가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를 놓고 광화문과 서초동에 각각 100만명 이상씩 집결한 적이 있다. 보수와 진보가 같은 시각에 거리로 뛰쳐나와 이렇게 극단적인 세 대결을 벌인 것은 아마도 해방 직후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 이후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었고, 여야 간 정권교체도 여러번 경험했다. 상이한 성향을 지닌 두 정파가 함께 공동정부(DJP 연대)를 구성한 적도 있다. 자기를 사형시키려 한 정적에게 사면과 용서를 실천한 전직 대통령도 있다. 지역주의도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극단적 대립과 진영 간 갈등을 증폭시켜가고 있는가? 극단적 대립의 배경과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금까지 많은 국민과 정치인들이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다. 대통령 권한 분산 개헌안이 그것이다. 최근에 박병석 국회의장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박 의장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대선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2017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소속 분과는 권력분과위였다. 권력분과위는 많은 논란 끝에 대통령 권한의 상당 부분을 총리에게 맡기는 분권형 정부제(이원정부제)를 다수안으로, 4년 중임 대통령제안과 내각제안을 소수안으로 채택했다. 여기서는 다수안이었던 분권형 정부제 개헌안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분권형 정부제 개헌안은 처음에는 대통령에게 국방, 외교, 통일의 권한을 부여하고 총리에게 내각을 맡기는 방향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권형 정부제를 지지하는 위원들도 국민 다수가 대통령제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또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국방, 외교, 통일로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고민과 논의 끝에 권력분과위가 최종 채택한 다수안은 대통령에게 기획·재정, 통일, 외교, 국방의 권한을 부여하고, 총리에게는 나머지 내각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기획·재정을 담당하는 부서는 재정 편성권을 통해 모든 부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국방, 외교, 통일에 덧붙여 기획·재정권을 부여한다면 권력분산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대통령제의 취지를 십분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다수안에서 총리는 대부분의 부서 구성권과 내각 운영권을 갖는다. 총리는 명실상부하게 제2인자로서 국정에 대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국회에서 소수를 차지할 때에는 다수당에 총리 자리를 맡겨 대통령과 역할 분담을 하게 함으로써 여소야대에 따른 국정 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제도하에서는 대통령과 총리를 배출한 각 정당 모두 상호 협력하지 않고는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우리 앞에는 저출산, 기후위기, 빈부격차, 청년 실업, 부동산값 폭등,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 대결 심화, 공교육 위기, 인공지능(AI) 시대 대비 등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점에서도 좀 더 생산적이고 통합지향적인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분권형 정부제는 그런 목적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제도다. 대통령선거 전에 개헌을 하면 가장 좋고, 그게 어렵다면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라도 권력분산형 개헌을 약속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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