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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대학병원 분원 경쟁이 씁쓸한 이유

등록 2021-08-04 20:14수정 2021-08-05 02:36

[왜냐면] 김효상 | 대한의사협회 법제자문위원

수도권 많은 지역에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치가 진행 중이다. 송도 연세의료원, 시흥 서울대병원, 청라 아산병원 등 유수의 대학병원들이 분원 설치 경쟁을 벌인다. 유치 성공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주민들은 환영 일색이다. 대학병원의 브랜드 가치가 지역의 가치를 올릴 수 있고 더 양질의 진료를 받게 될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분원 경쟁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일으킬 수 있다.

첫째, 대학병원의 분원 진입은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할 것이다. 의원에서 경증환자, 중증환자는 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는 큰 병원을 선호하는 국민 정서와 낮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 대학병원 분원까지 진출한다면 동네 병의원들은 대학병원 진료를 위한 진료의뢰서 발급기로 전락할 수 있다. 또한 대학병원으로 쏠리는 경증환자들로 인해 중증환자들이 제대로 진료와 처치가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상급 의료기관의 무한경쟁은 의료인력의 블랙홀이 될 것이다. 대학병원 분원이 생기는 것은 수많은 의료인력과 보조인력의 채용을 요구한다. 기존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료진과 보조인력의 이탈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채용 경쟁에 뒤처지는 의료기관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일시적 의료인력의 부족 현상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착시 현상을 일으켜 의대 증설의 정책 추진에 탄력을 주어 실제로는 의사인력의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의료기관 간의 무한경쟁은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것이다. 대학병원들이 진입하는 지역들에 이미 지역 대학병원들이나 종합병원들이 존재한다. 새로 개설하는 병원은 설립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기존 지역의료기관들은 매출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출혈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과잉 진료와 의료의 질 저하로 귀결된다.

넷째, 병상 수 규제라는 정부의 시책과 역행하며 다른 의료기관들에 역차별을 불러온다. 병상 총량제를 정부가 도입한 목적은 우리나라의 병상 수가 인구수 대비 과잉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자체장들에게 지역 총 병상 수를 제한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준 것인데 대학병원 유치를 희망하고 지역주민들의 지지가 필요한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규제가 아닌 유치의 목적으로 역행해서 활용해버린 것이다.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출점 금지 등을 이야기하는 정부에서 지역 의료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거대 자본인 대학병원의 진출을 보고만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섯째, 대학병원 본연의 역할에 어긋난다. 대학병원은 진료와 수술 입원을 통한 매출 창출만이 목적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교육기관이다. 의과대학생들과 전공의 교육을 진행하고 의료계 발전을 선도해야 할 대학병원이 의료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이익에 목매는 행동만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최근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을 점령하듯 분원 설치 경쟁에 나서는 것은 나만 살고 보자는 의료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에 대학병원의 병원장들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교수로서 의학자로서 대학병원의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계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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