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근 | 50대 남성·경남 양산시
지난달 하순 장마가 막바지에 이른 무렵이다. 출근하려고 현관을 여니 오늘도 어김없이 <한겨레> 신문이 놓여 있다. 비 예보가 있었던 까닭에 비닐로 밀봉되어 있다. 이웃집에는 역시 밀봉된 경제신문이 던져져 있다. 수작업으로 하는지 기계로 하는지는 알지 못하나 신문 한 부마다 비닐에 담아 입구를 녹여 막는 것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문지국의 정성과 수고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신문지국의 그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에 비는 오지 않았다.
얼마 전 이동학 쓰레기센터 대표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대표에 의하면 쓰레기 발생과 처리는 전세계적으로 재난에 준하는 문제로 부상하였다. 선진국에서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를 후진국으로 수출하고, 후진국에서는 환전 가능한 일부 쓰레기를 걸러낸 후 나머지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한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해양쓰레기는 연간 800만톤에서 1300만톤으로 추정되며, 태평양 곳곳에서 한반도 크기의 9배에 이르는 쓰레기섬을 이루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 대표는 극적인 분량 수치와 함께 전해주었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은 국가별 다양한 대응체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분해가 어려운 비닐의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70개에 가까운 국가가 비닐의 전면 사용 또는 부분 사용 금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아프리카의 후진국으로 알고 있는 케냐에서도 환경보호를 위해 비닐봉지 사용 금지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위반 시 징역 1년이나 약 2천만원의 벌금형부터 최대 징역 4년 또는 약 43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하고, 여행자의 짐까지 샅샅이 뒤져 비닐의 반입조차 막는다는 사실을 이 대표의 강연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구독자에게 깨끗하고 마른 신문을 주려는 신문지국의 정성은 당연하면서도 너무 고마운 일이다. 비 오는 날 모든 신문을 비닐에 담는 그들의 수고로움이 구독료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다. 비 예보 있는 하루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닐이 사용될 것인가. 이제 젖은 신문을 볼 권리를 허할 시점이다. 일년에 몇번쯤 젖은 신문을 보면 어떤가. 다른 신문은 몰라도 한겨레를 읽는 지각 있는 구독자라면 그런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지 않을까.
당장 한겨레부터 실천했으면 한다. 그것이 곧 한겨레스러움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니 젖은 신문이 싫다면 구독을 해지해도 좋다고 통지하라. 결단코 불만을 제기하는 전화는 단 한통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왜 진작에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느냐는 불만과 한겨레스러움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전화가 빗발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