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수|전 삼청교육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장 12·12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수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41년 전 ‘공포의 그해 여름’에 벌어진, 산천초목도 벌벌 떨었던 야만의 시대에 있었던 삼청교육대 인권유린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소환한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5·18 광주항쟁에 기겁을 먹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을 순치시킬 목적으로, 폭력배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경찰과 계엄군을 앞세워 고귀한 인명을 상대로 한 토끼몰이식 사냥을 1980년 8월1일부터 81년 1월25일까지 자행했다. 전국에서 6만여명이 검거되고 4만3599명이 전국 곳곳의 특전사, 공수부대 등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군부대에 마련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필자는 필설로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이곳을 러시아 솔제니친의 표현을 빌려 한국판 ‘수용소 군도’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1988년 국방부 오자복 장관 이름의 발표에 따르면 군부대 안에서 죽은 52명을 포함해 후유증 사망자 397명, 군인들의 무자비한 가혹행위로 정신이상자를 비롯한 상(장)해자가 2768명, 행방불명자 4명이 발생한 미증유의 끔찍한 대학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치안본부(경찰청 전신)에서 밝힌 자료를 보면 당시 끌려간 이들 가운데 고등학생·대학생 1400여명, 대학교수를 포함하여 공무원, 언론인, 의사, 약사, 기업체 사장 등 사업가가 3475명에 이른다. 그러나 애초 선전과 달리 잡혀 온 다수의 사람은 기층민이었다. 장애인·병자·넝마주이·장발이라고, 문신을 했다고, 부부싸움을 했다고, 노임이 밀렸다고, 계를 한다고 붙잡혀 갔다. 공원에서 남녀가 포옹을 하다가, 행상을 하다가, 노상에서 시비를 하다가, 술주정하다가, 불심검문 태도가 좋지 않다고 끌려가기도 했다. 전과를 말소해주겠다는 회유까지 끌려간 이유는 실로 터무니없고 다양했다. 여기에 김대중·김영삼계 정치인, 야당 인사, 노동운동가, 바른 기사를 써온 기자(언론인) 등 군부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지식인들을 마구 잡아다가 온갖 린치를 감행했다. 그러고는 관영 티브이(TV) 등 어용언론을 통해 사회정화 운동을 위한 강력범죄 일제 소탕이라고 나발을 불어 합리화했다. 삼청교육대 실상에 대한 피해자의 일부 증언을 보자. 해병대 ○○ 훈련소에 끌려가 주먹, 군홧발, 몽둥이, 총개머리 세례 등 매에 못 이겨 짐승처럼 울부짖는 동료들의 신음소리가 밤하늘에 메아리쳐 갔다는 이○봉 증언, 새벽 6시에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어린아이들을 집에 남겨 둔 채 강원도 ○○ 여군 공수부대에 끌려가 악행을 당했다는 부녀자 박○숙 증언, 29살 남편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부대 안에서 군인들이 쏜 총격에 무참히 죽었다는 김○엽 증언에 더불어 삼청교육대에 갔다가 병든 몸으로 귀가했으나 골병이 들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정신이상이 되었거나 죽었다는 등의 피맺힌 증언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노천에서 저항한 광주항쟁과 달리 삼청교육대는 군부대 안에서 은밀하게 자행된 미증유의 최대 인권유린 학살극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는 문재인 정부 역시 역대 정부처럼 무관심이라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한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헤매고 있을 수많은 영혼과 행복했던 피해자들의 삶이 풍비박산되어 패가망신한 천추의 한을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자 한다. 언필칭 문재인 촛불혁명 정부에 4만3천여명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요구한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명예회복을 위한 대통령 유감 표시와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 건립 등 5·18 광주항쟁과 제주 4·3 사건에 버금가는 특단의 대책 마련을 타는 목마름으로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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