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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LH 개혁안’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등록 2021-08-18 19:01수정 2021-08-19 02:37

[왜냐면]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의 조직개편안이 마련되어, 공청회와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세가지 안 모두 문제의 본질인 ‘업무’는 그대로 둔 채다. 주객이 전도되어,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엘에이치의 업무는 크게 토지, 주택, 주거복지, 기타(해외 사업, 기술 개발 등)로 분류된다. 조직개편 1안은 ‘주거복지+주택’으로 묶고 ‘토지’를 병렬분리하는 안이다. 2안과 3안은 ‘토지+주택’은 묶어놓고 ‘주거복지’를 각각 병렬과 수직으로 분리한다. ‘기타’ 분야를 다른 조직에 넘기는 것은 공통이다.

조직개편안을 관통하는 고민은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주거복지 부문의 적자 보전 방법과, 원활한 주택 공급이다. 정부 스스로 1안은 현재의 공급대책에 차질을 빚을 우려, 2안은 주거복지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3안은 공급대책도 수행하면서 주거복지 부문이 모회사로 주거복지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가 있다. 상법상 모회사가 자회사의 경영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 개입한다 해도 자회사가 언제까지 현금을 벌어올 수 있는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관계자들의 주식 거래를 막는 자본시장법 수준의 규제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직원들의 일탈 행위는 사실 이번 사태의 결과에 가깝다. 원인은 20세기 개발 시대의 패러다임에 젖은 업무다. 이는 ‘택촉법 체제’와 ‘교차보조’로 요약된다. 전격적으로 지구를 지정하고 토지를 수용하여 대규모 택지를 단시일 내 조성하는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른 개발 방식과, 여기서 생기는 수익으로 주거복지 부문의 비용을 대는 ‘교차보조’ 방식은 과거 개발할 곳이 많던 도시화 시대에, 재정 여력은 충분하지 않았던 정부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식이었다. 한때는 주택을 신속하게 대량 공급하는 비결이었지만, 지금의 문제를 낳은 배경이다.

엘에이치의 주거복지 부문에서 1.7조원의 적자가 나는 이유는 낮은 임대료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가 수준으로 임대료를 받고, 대신 현재 2조원 수준에 불과한 주거급여지원액을 확대하자. 그러면 공기업이 ‘교차보조’를 위해 개발 분야에서 수익을 낼 필요가 없다. 지금의 3.3조원의 순익을 내는 대신 분양가를 낮추는 것도 가능해진다. 어차피 3기 새도시 이후에는 더 이상 대규모 개발도 힘든 상황이다. 부동산이 그렇게 문제라면 500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에서도 마땅한 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끊임없는 개발과 지가 상승에 기대는 업무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다.

앞으로 토지주택 분야 중앙공기업의 주된 임무는 ‘토지(주택)은행’이 되어야 한다. 군사작전 같은 새도시 개발이 아니라, 도시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용도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서 평소에 꾸준히 토지를 비축하는 업무다. 당장은 도심 재개발이나 주택 공급에서 ‘공공디벨로퍼’의 역할이 일부 남아 있다면, 필요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엘에이치가 지방공기업, 사회적 경제 주체 등과 협력하는 다양한 공급생태계로 진화해가는 로드맵이다. 공공의 신용을 바탕으로 민간의 창의성과 풀뿌리의 자발성을 도입하는 21세기 중앙공기업의 비전을 먼저 수립하고, 조직개편안은 이에 맞게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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