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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대체육’과 한국의 외교

등록 2021-08-23 16:18수정 2021-08-24 02:36

[왜냐면]
기후위기 시대의 육식


[왜냐면] 김지운|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의 작은 사립대학에서 현재의 국립대학 정치외교학과로 이직한 뒤 약 3년이 지난 2016년, ‘환경 및 자원 안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환경 오염과 자원 고갈은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하나의 ‘안보’ 이슈임을 주장하는 과목이다. 사실 오래된 주장이다. 미국 뉴저지주 남부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농부로 시작해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저술가가 된 레스터 브라운은 1977년 이제 국가안보는 국경 밖의 군사적 위협보다 생태계 악화나 석유 매장량 감소 등에 달렸다고 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프린스턴대학교 리처드 울먼 교수는 <국제 안보>(International Security)라는 저명 학술지에서, 국가안보를 만연한 가뭄이나 부족한 천연자원 등 국민 삶의 질을 격감시키거나 정부 정책 부재를 초래하는 위협들에 대한 것으로 폭넓게 정의했다. 이러한 환경 및 자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한 나라의 정치적 정통성을 손상하거나 국가 간 분쟁을 촉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환경과 자원이 정치외교학적 주제가 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는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국가의 심각한 안보 이슈, 즉 ‘공공의 적’이 된다는 것이다. 기실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인간 행동이 내뿜은 온실가스는 43% 증가했고, 작년 세계는 기록이 시작된 1880년 이후 가장 더운 지구를 경험했다. 더불어 더욱 빈번하고 극심해진 폭염, 폭우, 가뭄 등을 겪게 되었다. 이제 ‘탄소 중립’은 실로 세계 평화를 위한 시대적 사명이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의 완수는 의외로 육류 소비를 줄이는 식단의 변화를 통해 앞당겨질 수 있다. 메탄은 온실가스 가운데 16%를 차지하지만, 그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5배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축, 그중 특히 소는 메탄 배출의 주범이다. 기후변화와 그 파생 효과를 생각할 때, 토머스 모어의 말을 흉내 내어 “소는 온순한 동물이지만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외칠 형국이다.

물론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식물 기반의 대체육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먼저 외교력을 발휘하여 몽골,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과 다자간 협력을 통해 대체육 제조에 쓰이는 대두·완두, 밀, 감자 등의 공동 생산기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우리의 경작지를 잠식하며 또는 남미의 열대림을 불살라 가며 이들을 생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북방정책 2.0’의 기획과 실행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국내외 대체육 시장의 전망은 밝다. 고기 공급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 고기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소고기 소비는 2005년과 2020년 사이 6.0㎏에서 11.9㎏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작년 카자흐스탄의 1인당 소고기 소비는 한국의 1.7배였다. 대체육의 영역을 돼지고기와 닭고기로 확장하면 시장은 더 커진다.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다. 그리고 러시아의 1인당 가금류 소비는 소위 ‘치킨공화국’으로 통하는 한국보다 1.6배 더 많다. 만약 식물 기반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에게 수용된다면 북방의 생산기지와 인도, 인도네시아 등 남방의 거대 시장이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대체육은 노인들의 소화를 돕는 단백질원으로서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이미 고령화에 접어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북한을 포함, 아시아의 영양실조 인구는 2019년 3억8000만명이 넘었다.

다가오는 차기 정부가 아무쪼록 강대국 간의 갈등과 지정학적 질곡에 얽매이기보다는 기후변화라는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는 구체적 사업들을 선도하여 상생의 길을 넓혀가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종국에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 외교의 발언권과 운신의 폭을 넓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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