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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또 ‘전술핵’,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잔 말인가

등록 2021-08-30 17:30수정 2021-08-31 02:36

[왜냐면] 김성배ㅣ전 국정원 해외정보국장·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나토식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심지어 ‘공포의 균형’ 같은 과거 냉전시대에나 익숙했던 말들까지 나온다. 한반도의 시계가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나토식 핵공유는 기본적으로 냉전의 유산이다. 미국은 옛 소련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과 한반도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했다. 나토 동맹국들과는 핵공유 협정을 맺었지만 주한미군은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통제했다. 한국군은 전시작전권이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핵공유는 실질적으로 전술핵 재배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맹국 영토 내에서 미군이 핵무기를 관리하다가 핵사용이 결정되면 동맹국의 항공기에 탑재하여 투하하는 식이다. 핵무기 발사코드는 미국 대통령이 통제하며 동맹국은 핵사용 거부권은 있으나 명령권은 없다.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지에 대한 불신에 기초한다. 사실 한-미 동맹의 확장억지로도 핵억지는 충분하다. 미 본토뿐만 아니라 한반도 인근 괌 기지에서 발진하는 폭격기나 해상발사 핵무기를 통해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술핵 발사권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 영토 내에 핵무기가 있다는 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오히려 북한과 주변국들의 최우선 표적이 되어 유사시 핵 선제공격의 대상이 될 뿐이다.

최근 유럽의 전문가들은 오히려 전술핵무기의 배치 없이 핵우산을 제공하는 아시아 모델을 주목하고 있다. 나토식 핵공유는 전술핵무기 보관에 따른 안정성, 유지 비용,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있는 데 반해 한국과 일본의 경우 전술핵무기의 배치 없이도 핵우산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사실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에 남아 있는 전술핵무기 규모도 100기의 상징적 수준이다.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수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의 전술핵은 최대 7300여기에 달했지만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감축하여 현재 미국 본토에 130기, 유럽 동맹국들에 100기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미국 본토에 남겨둔 전술핵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비상용이다.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은 정책을 가지고 소모적 논쟁을 벌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정면 위반이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고 나서 선택하는 대안이 공포의 균형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냉전시대에 탄생한 이 말은 핵전쟁의 결과 모두가 멸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전쟁을 억제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대국끼리 소위 상호확증파괴(MAD), 즉 선제 핵공격을 받아도 상대방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도의 핵전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전술핵무기로는 성립되기 어려운 개념이며 전략핵무기가 필수적이다. 결국,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제한적인 핵군비경쟁이 수반되어야 한다.

핵공유나 전술핵 재배치는 진영의 논리나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워낙 우리의 안보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우리 국민들은 핵전쟁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진정 이러한 미래를 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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