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유|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원 원장·인천대 초빙교수 우리나라에서 1930~4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삶은 특별하다. 나라를 빼앗긴 중에 태어나서 조선시대 정서를 갖고 있는 조부모와 부모 세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사람이 덧없이 죽어나가는 극한상황을 겪었다. 독재 시대에는 하고 싶은 말 참아가면서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자녀들을 키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녀의 자녀까지 돌봐야 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가 되었고, 대통령을 공공연하게 비난해도 잡혀가지 않는 정도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혔고,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며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정착시켜나가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몇몇 인사들이 해낸 게 아니다. 말없이 자기 삶에서 일익을 담당해온 수많은 주역이 있었다. 이제 이 세대들이 스러져가고 있다. 이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공공기관의 공식기록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때 묻은 생활용품들과 기억들을 아카이빙한다면 역사의 소재가 풍부해지고, 소통과 공감이 넓어지고, 시대의 교훈을 공유할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비단 과거의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의 고통은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고 있는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사업’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기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차곡히 쌓여가는 이야기 속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상황, 이웃을 배려하는 세심한 마음,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격려와 믿음, 정부정책에 대한 공감, 바람, 비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일상을 기록화한다면 불안과 공포와 슬픔의 팬데믹 과정에서도 서서히 미래를 여는 지혜의 열쇠를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욱이 이번 일은 평범한 시민들이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생활사 기록가’로서 평범한 시민을 인터뷰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삶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과 함께 기록하는 역량도 축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준비할 일이 있다. 우선 체계적인 아카이빙을 위한 절차와 방법을 꼼꼼하게 계획해야 한다. 모름지기 아카이브라고 하면 기록을 획득하는 과정, 안전하게 관리 보존하는 시설과 환경, 누구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의지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기록학 이론과 유사 경험 사례를 잘 참고하고 검증된 방법을 적절히 적용하며 합리적으로 미래 상황을 예측해야 최적의 아카이브를 만들 수 있다. 그 몫을 담당할 사람들 간의 진지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인 국가기록원(행정안전부 소속)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기록원은 정부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를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왔지만, 국가적 기록관리 정책을 총괄하고 민간기록에 대한 수집, 관리도 담당하는 아카이빙 전문 국가기관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중복사업을 지양하며 효율적인 아카이빙을 위해서 정부 차원의 관련 기관 간 협의가 필요하며, 다양한 전문역량이 협력하여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노력의 결과는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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