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장헌권|광주 서정교회 목사
어떤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광주시민으로서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요. 그동안 출석을 하지 않다가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재판부의 소식을 듣고 지난 9일 폭염 가운데 항소심 세번째 재판에는 참석을 했지요.
그때 저는 방청권을 가지고 광주지방법원 법정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전두환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모습이 그동안 언론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수척한 것은 물론 걸음도 혼자 걷지 못하고 부축받아야 할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면서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이의 마지막도 똑같이 늙고 병들어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아 인정심문을 할 때 이름도 주소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해서 부인이 옆에서 알려주면 띄엄띄엄 말하는 것을 보고 저건 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직업을 물어볼 때 “무직”이라고 대답했다가 판사가 ‘전직 대통령이지요?’ 하니까 “예”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후 바로 꾸벅꾸벅 졸다가 재판 시작 20분 정도에 경호원을 불러 호흡이 곤란하다고 호소했지요. 판사가 ‘호흡이 곤란하냐’ 물어보니까 부인이 “아마 식사를 못 해서 가슴이 답답한 것 같다” 하고, 판사는 ‘그러면 잠시 휴식을 하라’ 했지요.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퇴정한 후 다시 들어와서 재판은 30여분 만에 마친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처음 법정에 들어올 때와 잠깐 퇴정과 다시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도 이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난 후 언론을 통해서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광주 법정에 다시 서기를 기대하지만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하늘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죽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삶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던 길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형성된 삶의 역사인 존재는 죽음과 함께 삭제되거나 폐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 안에서 영원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41년 전 그동안 광주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슬픔과 아픔으로 절망하게 했던 기억입니다. 대통령 시절 광주를 방문할 때 마치 개선장군처럼 광주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던 당신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 미소가 광주 5·18 학살의 책임자의 것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신군부의 핵심자로서 광주에서 자행한 학살의 잔혹상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갈 수는 없습니다.
광주 법정에서 오월 어머니들이 소복을 입고 외쳤던 한마디는 ‘잘못했다는 사과와 참회’입니다. 평생 가슴에 품은 한과 트라우마로 살았던 오월의 사람들은 그 한마디만 들어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의 죽음 앞에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가요? 대답은 하나입니다. 존경을 받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모든 인간이 바라듯 품위 있는 마지막을 위해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마지막 그 길에 양심이 부활되길 기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