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대훈ㅣ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위원장
수도권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9월14일 파업을 예고했다. 예년에 비해 높은 파업 찬성률이 나온 이유에는 ‘코로나 재정난이 노동자 탓이냐’는 항변과 분노가 깔려 있다.
오세훈 시장은 취임 직후 서울교통공사 사장을 불러 ‘강도 높은 경영합리화’를 지시했다. 외부에 손을 벌리기 전에 자구책부터 마련하라는 것. 공사 경영진은 속된 말로 ‘조인트’를 까인 끝에 구조조정안을 전격 발표했다. 1971명에 달하는 인력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이 주요 골자다. ‘코로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혁신’이란다. 과거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때마다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도 모자라 세계적 유행 감염병으로 닥친 재정난마저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다. 지하철 현장은 말 그대로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가 되었다.
지난해 적자 1조1000억원, 올해 예상 적자는 1조6000억원. 서울교통공사가 직면한 사상 초유의 적자 규모다. 지난해 공사의 순손실액은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코로나 사태로 운수 수익은 전년과 비교해 4500억원가량 줄었다. 그뿐이랴. 노후 전동차 교체 등 안전 재투자에도 매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낙인처럼 찍힌 서울지하철 ‘만성적자’의 원인을 들여다보자. 노인·장애인 등에게 제공하는 무임제도에 따른 비용은 해마다 증가해 당기순손실 대비 70%에 이른다. 버스 환승할인 등까지 더하면 공익서비스 제공 비용은 사실상 당기순손실을 웃돈다. 무임제도는 국가 정책에 따른 교통복지 비용이지만 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대중교통 할인제도로 발생하는 손실을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보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엎친 데 덮친 격, 요금 의존도가 높은 지하철에 승객이 급감하는 건 치명타였다. 오죽하면 서울지하철을 두고 ‘기저질환자가 코로나에 걸린 격’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공사는 올해 초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임금체불은 물론 부도 사태까지 올 수 있다’며 재정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냉담한 외면뿐이었다. 정부는 지자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팔짱만 끼고, 서울시는 정부 지원이 유일한 회생책이라며 뒷짐 지고 있다. 시도 정부도 ‘폭탄 돌리기’만 일삼다가 이제 와서 자구책이 우선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경영진이 내놓은 자구책은 결국 대규모 감원과 안전관리 외주화 등 구조조정이었다.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구의역 사고 등 안전문 정비 노동자의 잇단 참사를 초래했던 극약 처방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노조는 ‘서민의 발’ 지하철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와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한다. 코로나 재난 시대에 더욱 긴요해진 지하철과 같은 필수 공공서비스 유지· 확대를 위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 저질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나 시민의 안전을 해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또 교통복지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공공교통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공적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교통복지 축소, 요금 인상, 구조조정을 꺼내 드는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도 코로나 시국에 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정부·시가 강행하는 구조조정은 코로나 못지않게 노동자와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정책이다. 열차가 멈추기 전에 잘못된 정책을 멈춰야 한다. 지금 시민 안전을 볼모로 삼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