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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500㎞ 평등길을 출발하며

등록 2021-10-11 18:45수정 2021-10-12 02:33

제19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길이 50m에 이르는 대형 무지개 깃발을 함께 든 채 서울광장을 출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제19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길이 50m에 이르는 대형 무지개 깃발을 함께 든 채 서울광장을 출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왜냐면] 이종걸ㅣ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10월12일 나는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와 함께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일 500㎞ 도보행진을 시작한다. 고된 길을 떠나는 이유는 이렇다. 국회가 10만 시민들의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안 심사를 또 11월10일까지 연장 통지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4개의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국회는 차별금지법안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2007년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가지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된 채로 발의되어 차별조장법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시기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했던 나는, 14년 동안 법제정을 미루고 있는 국회를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여 차별금지법의 연내 제정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평등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40대 중반 시스젠더 게이 남성인 나는, 2003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게이 합창단 모집 공지를 보고 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어릴 적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90년대 수많은 영화와 음악, 서적 등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나와 같은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갔다. 동성을 사랑하고 그들과 섹스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내 존재를 긍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친구사이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당연하다는 것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활동의 폭을 넓힐 무렵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건으로 군의 반인권적인 태도를 목격했다. 너무나도 정 많고 사랑스러운 한 친구사이 회원은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회원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한 청소년 게이와 상담하면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고민은 더해 갔다. 성소수자의 정신건강 문제 해결에는 사회의 지지와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국가는 “사회적 합의”, “시기상조”, “나중에”만 되풀이했다. 한 개인이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을 혐오하고, 마음을 앓는 현실을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믿고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언어가 필요했다.

성소수자들은 그동안 여러차례 맞서 싸우면서 반차별 운동의 주체로 앞장서왔다. 성소수자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농성,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전국 각지의 퀴어문화축제 등을 벌여왔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관련 논란을 넘어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감각을 넓혀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우리 사회의 대표 시민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힘을 내왔다. 성소수자들이 존재를 드러내어 권리를 말하고 유예된 평등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금, 사회는 이들에게 좀 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존재 자체를 거듭 증명해야 하는 차별의 현실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국회는 차별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차별임을 말해야 한다.

500㎞ 평등길은 누군가가 먼저 차별을 말하며 용기 낸 길임과 동시에, 앞으로 힘을 낼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보태는 길이다. 시민들이 직접 평등의 길을 연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함께 걸어주기를 부탁한다. 길을 이어줄 누군가가 주변에 있음도 잊지 마시라. #평등길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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