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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상속세 개편, ‘기회균등 이념’ 잊지 말아야

등록 2021-11-01 18:07수정 2021-11-02 02:33

[왜냐면] 김현동ㅣ배재대 교수(조세법)

정부가 상속세 개편을 예고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집값 급등으로 민심이 흉흉한 상태에서 오른 집값 탓에 상속세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생긴 부작용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 상속세의 기본 이념과 순기능에 역행하는 잘못된 개편안이 나올까 우려스럽다.

기실 논쟁거리로서 위상에 비해 상속세를 실제로 걱정할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국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피상속인(사망자) 34만5290명 중 과세 대상 인원은 8357명이다. 100명 사망 시 2.4명이 남긴 재산에 대해서만 상속세가 부과된다는 말이다. 이와 달리 최근 집값 급등으로 과세 대상이 확대될 것이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확대될지, 상속세가 과다한 수준일지는 따져봐야 한다.

상속세 계산에서 세율을 적용하는 과세표준을 구하기까지 상속재산 가액에서 여러 항목을 빼준다. 장례비, 피상속인이 진 채무 등 여러 항목을 제한 후에도 최소 10억원(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있을 때)은 무조건 차감한다. 상속재산 중 금융재산이 있다면 최대 2억원을 추가로 뺀다. 가업 상속에 적용하는 별도 공제 항목도 있다.

서울의 주택 중위가격은 7억1천만원, 아파트는 9억4천만원이다(한국감정원 8월 주택가격동향). 중위가격을 넘는 모든 아파트가 무조건 상속세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가령 12억원짜리 아파트라도 2억원의 대출이 껴 있다면 낼 상속세는 없다. 대출이 없다면 2800만원가량이 부과된다(배우자, 자녀 1인으로 가정). 이 경우 집값 대비 실제 세금을 부담하는 비율(실효세율)은 2.3%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근로소득으로 12억원을 벌었다면 기본적인 공제 가정 시 소득세는 대략 4억5천만원, 실효세율로 37.5%가 된다. 상속세 부담이 정말 과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현재의 중위가격도 집값이 상승장일 때 이야기고, 향후 내림세로 돌아선다면 덩달아 중위가격도 낮아질 터다. 상속세는 보유세처럼 매년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상속 개시 때 매기는 세금이다. 지금이 아닌 상속 시점의 집값이 어떻게 될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있다. 아직도 일각에서 단순히 명목세율을 놓고서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재벌이나 고액 자산가의 상속이 아니라면 명목세율로는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 과세표준까지의 계산 과정이 나라마다 다른 까닭에 실효세율을 써야 한다.

상속세가 이중과세라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르다. 이중과세 금지 원칙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 세법 체계에서 이중과세는 내재한다. 게다가 상속세의 납세의무자는 다르다. 내가 번 소득을 두번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상속세의 이념적 기초는 생각하는 것보다 튼튼하다. 우리 사회에서 화두로 자리잡은 기회균등과 상속세의 이념은 실로 가깝다. 부모 잘 만난 덕에 출발선이 남들보다 앞서 있는 것은 공정한가? 상속세가 시장경제를 무시할 정도로 상속재산 전부를 빼앗는 압살적 조세도 아니다. 최근 오이시디(OECD) 보고서(Inheritance Taxation in OECD Countries)도 부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단으로 상속세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기회의 균등을 취업이나 입시의 영역으로만 보았다면 큰 착각이다. 기회균등은 더 큰 차원에서 봐야 한다. 정부는 상속세가 기회균등을 실현하는 세법상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속세 개편은 그런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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