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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OECD 가입 25년, 한국의 현주소

등록 2021-11-15 17:54수정 2021-11-16 02:03

노인빈곤, 양극화 ‘압축성장’ 그늘 극복해야
9일 오후 서울 양천구청에서 열린 \'제1회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참여자가 손을 꼭 쥐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양천구청에서 열린 \'제1회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참여자가 손을 꼭 쥐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흥종ㅣ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에 가입한 지 올해로 25년이 되었다. 오이시디가 내세우는 가치관이 ‘개방된 시장경제’, ‘다원적 민주주의’, ‘인권존중’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세계화와 민주화를 내세웠던 당시 문민정부는 여러모로 오이시디의 지향점과 맞았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의 29번째 회원국이었는데 지금 회원국 수가 38개이니 이제 우리는 후배 회원국이 9개나 되는 중견국가가 되었다.

가입 순서만 따질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1996년 당시 전체 오이시디의 2%에 불과했으나 2020년 3.3%로 늘어났다. 오이시디 평균의 70% 수준이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지디피)은 이제 오이시디 평균과 같다. 오이시디 평균에 2년 정도 미달하였던 평균수명은 지금 오히려 2년 이상 더 높아졌다. 이제 한국은 출생 시 기대수명이 오이시디 국가 중 다섯번째로 높은 수준에 와 있다. 지디피 대비 연구개발 투자도 가입 당시 평균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두배에 근접하고 있어 혁신 경제를 선도하는 나라의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나라는 가입 당시 여전히 개발 원조를 받고 있었으나, 마침내 2010년 오이시디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좋든 나쁘든 크게 변하지 않은 지표들도 있다. 여전히 오이시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반면, 학업에 대한 흥미도는 낮다. 자살률은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며, 특히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다. 이는 노인 빈곤율이 오이시디 평균의 약 세배 수준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출산율은 가입 당시에도 평균을 밑돌았으나 최근에는 기록적으로 낮아져, 이 추세라면 2100년 이후에는 국가 소멸단계에 접어든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오이시디에 가입한 지 25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오이시디는 동료비교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좀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은 나라, 역동성과 창의성이 분출하는 나라, 최빈개도국에서 60여년 만에 선진국으로 진입한 매우 희귀한 사례,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나라로 그려진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축적으로 이룩한 민주화와 경제적 성취는 오이시디에서 한국을 불가피하게 차별화한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오이시디에서 경상계정 중 상품계정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나라다. 서비스계정이나 본원소득계정, 이전지출의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 소득계정이 여전히 작은 비중인 것은 압축성장 속에서 완전히 퇴화되지 않은 수출주도형 개도국의 흔적이다. 마치 높은 근로소득을 얻고 있으나 자산은 없는 흙수저 출신의 유능한 노동자와 같다. 그래서 불안하다.

왜 우리나라의 노인세대는 인생의 말년을 위하여 준비하지 못했을까. 젊은 시절 자식 교육에 몰두해서 부를 축적하지 못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보다는 압축성장이라는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인세대는 최빈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다. 빠르게 변하는 나라에 적응하기도 바빴다. 그리고 과거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우리 사회는 이 노년세대와,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개발연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남겨놓고 선진국으로 강제이주 당한 장년세대와, 태생적으로 선진국 시민인 청년세대가 함께 사는 용광로와 같은 사회이다. 다른 오이시디 국가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세대 갈등을 넘어서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앞의 예를 보자면, 왜 자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하는지, 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해진다. 오이시디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이 거울을 통해서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자. 선진국은 문제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진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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