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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빅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핵심가치

등록 2021-11-17 18:11수정 2021-11-18 02:32

[왜냐면] 이상훈|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현재 전세계 모든 기업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디지털 전환이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기술은 바로 빅데이터일 것이다. 아마존은 오래전부터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제품 추천, 수요 예측 등에 활용하고 있으며, 나이키의 소매 및 마케팅 전략은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를 모아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지식을 뽑아내는 것이 빅데이터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지식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지식은 암묵지와 형식지로 구분된다. 암묵지는 학습 및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며, 형식지는 말이나 글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공유될 수 있는 지식을 뜻한다. 암묵지는 개인 간에 관찰, 모방을 통해 전수되다가 대화나 사색을 통해 형식지로 표출되며, 이는 다시 기존 형식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지를 낳는다. 그리고 새로운 형식지는 조직 전체에 내면화되어 구성원 개개인의 암묵지가 된다. 지식은 해당 과정의 순환을 통해 창조되고 증폭된다. 과거에는 이를 원활히 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 및 지식자산 관리에 많은 자원을 할당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지식경영 방법론은 특정 개인이나 시스템으로부터 지식이 창출되기에 의사결정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객관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고, 표준화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빅데이터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점차 잊혀가는 개념이 되었다.

다만 최근 각광받는 빅데이터 활용에서 문제는, 많은 기업이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의식 없이 기술 도입 자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은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기존에 엑셀로 관리되고 있던 데이터를 단순히 플랫폼만 바꿔서 모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분석 환경이 수시로 변한다면 도출된 결론은 활용할 수 없다. 이는 지식창조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신기술 도입 실패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1990년대 레고는 비디오 및 피시(PC) 게임 시장이 성장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혁신으로 위기를 타파해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기존 브릭 제품 사업에서 벗어나 영화와 게임, 인형, 시계 등 새로운 사업 확장을 시도했으나 유의미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2004년 파산 위기에 몰린다. 이후 단순히 혁신을 시도한다고 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은 레고는, 브릭을 활용한 놀이와 교육이라는 기존 핵심 가치와 지식자산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경영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까지도 핵심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신기술을 도입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이 레고의 과거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빅데이터의 전성시대, 그때그때 유행을 좇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진정한 혁신을 위한 첫걸음을 자사의 핵심 가치와 지식자산 파악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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