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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진보의 분열, 이제 끝내야 할 때다

등록 2021-12-20 18:44수정 2021-12-21 02:31

후보 단일화의 당위와 조건

[왜냐면]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거의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던 진보 대선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5개 진보정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정의당·진보당)과 민중경선운동본부, 민주노총으로 구성된 대선공동대응기구는 12월 말까지 이를 위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지난 12일 합의했다.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그동안 진보가 분열된 폐해는 너무도 컸다. 진보의 다양성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영역과 힘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시켰다. 진보 지지층의 절반 이상이 민주당 표로 전환하였고, 나머지는 표가 갈리면서 국회와 지방의회 권력을 보수 양당에 내주었다. 이로 인하여 기득권동맹은 더욱 굳건해지고 보수 양당이 적대적 공존을 하면서 거의 모든 가치와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 민중은 철저히 배제된 채 과도하게 수탈당하여 불평등은 심화하고 상당수가 생존위기에 놓였으며, 개혁은 늘 유보된 채 기득권의 부와 권력은 점점 증대하였다. 민주주의 또한 직접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와 결합하지 못한 채 보수 양당의 권력을 강화하는 형식기구로 전락했다. 운동은 늘 고립되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의 한 맺힌 아우성처럼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민중의 피 맺힌 목소리는 울타리 밖에서만 맴돌았다.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었음에도 진보의 주체적 역량과 괴리가 너무도 큰 것이 현 국면에서 진보가 맞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불평등의 극대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 위기 등 5대 위기로 세상은 파국 직전에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탈자본과 탈성장으로 전환하는 것뿐이다. 좋은 개혁책도 상품화하여 무력화하고 과학기술을 비롯한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를 화폐증식이나 이윤추구로 몰고 가기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대안도 미봉책이다. 이런 대안을 급진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 생각한 이들도 속속 체제 전환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진보는 이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기득권에 투항하거나 수렴되었다. 그 바람에 패배주의, 냉소주의, 조합주의가 진보 진영을 내리누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단일화 성패의 결과는 극과 극이다. 한 정당이나 정파의 욕심과 오판으로 실패한다면 진보정당은 괴멸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하여 기계적 결합을 넘어 하나의 대오로 보수 양당과 다른 정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면, 지방의회부터 3분 체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매개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실체로서 작동시키고 대안 정치의 진면목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위성정당을 금지시킨다면, 다음 총선에서 최소 20석에서 4분의 1가량을 차지하여 체제 전환의 중대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변혁운동이 정치를 좌파적으로 견인하고 진보 정치가 운동을 고양하는 선순환의 길이 열린다.

지금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 민중이다.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 자산의 8할을 점유한 상황에서 코로나가 닥치자 불평등은 더욱 심화했다. 디지털혁명, 코로나 사태에 이어서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화와 로봇화가 추진되면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불안정노동자, 플랫폼노동자, 유령노동자(ghost worker)로 전락했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공식 848만여명, 비공식 1100만에 달하며 이들의 평균 월급은 172만8천원에 지나지 않는다.(‘통계로 본 한국의 비정규노동자’) 지난해에도 산업재해로만 2062명이 사망했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들은 66조가 넘는 빚을 떠안았고 하루 평균 1000여개 매장이 폐업했다.”(자영업 비대위 기자회견문) 오늘도 수많은 국민이 빚으로, 사고로, 코로나로, 외로움과 분노로 죽을 것이다.

진보는 언제까지 이들의 죽음을, 피눈물과 절규를 외면할 것인가. 그 언제까지 체제 전환의 좋은 지평이 열렸는데 눈앞의 현안이나 정파의 이익에만 집착할 것인가. 이번에도 진보의 연대에 실패한다면, 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역사의 죄인이자 사회적 타살의 방관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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