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권우현 |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지록위마’, 중국 진나라의 환관 조고가 허수아비 황제 호해를 농락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고는 황제의 앞에서 사슴을 두고 말이라 우기고, 조고의 위세에 눌린 다른 사람들마저 저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라고 거짓말을 하니 황제 호해는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고대판 ‘가스라이팅’이랄까.
황제도 환관도 사라진 시대에는 기업 혹은 국민의 일꾼을 자처하는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을 희롱한다. ‘국가 온실가스 종합관리시스템’에 기록된 대기오염물질 배출 1위 민간 기업인 포스코가 이제는 신규 석탄 발전소까지 건설하면서도 뻔뻔하게 “이 세상의 그린(GREEN)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광고를 내보내는 것도, 에스케이이엔에스(SK E&S)가 뻔히 오스트레일리아에 신규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는데 탄소중립 조기달성이 목표라고 공표하는 에스케이그룹의 모순도 모두 녹색 아닌 것을 녹색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지록위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내 액화천연가스(LNG·엘엔지) 발전소들은 ‘에코’, ‘그린’ 등 온갖 친환경적 이름을 붙이며 녹색을 참칭해왔다. 하지만 엘엔지는 시추, 정제, 운송, 연소·소비 등 전 과정에서 대량의 메탄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을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기후솔루션은 기존의 석탄 발전을 엘엔지로 대체하더라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고작 30% 정도일 것으로 분석했으며, 국제 연구기관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소(CREA)는 현재 한국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라면 엘엔지 발전이 유발하는 대기오염으로 2064년까지 2만3천여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엘엔지를 녹색이라고 우기는 촌극은 정점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올해 안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케이택소노미)를 수립하겠다며 의견 수렴용 최종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녹색분류체계는 탄소중립 시대에 확대될 녹색금융을 염두에 둔 일종의 가이드라인 성격을 띠는 분류체계다. 즉, 무엇이 녹색경제활동인지 규정함으로써 막대한 투자를 유도해 경제활동이 탄소중립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엘엔지 발전’이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되고야 말았다. 기업이 화석연료 산업에 대해 ‘에코’니, ‘그린’이니 이름 붙이는 것과 정부가 이를 공인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번 최종안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여러번의 의견 수렴을 거치며 다양한 수정안들이 제시되었는데 엘엔지 발전은 막판에야 포함되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산업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야말로 ‘지록위마’, 고사성어 그대로다. 기업들의 위세에 눌려 정부마저 반환경적 산업을 녹색이라고 인정해주니 이제 국민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까.
한편, 엘엔지 포함 논란을 틈타 일각에서는 탄소 배출이 적은 원전까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위험’하며 단선적인 주장이다. 원전이 ‘녹색’이 될 수 없는 까닭은 탄소 배출이 많아서라기보다 인류에게 장기적 위협이 되는 핵폐기물의 발생·처리·저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반환경성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관해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위험하고 더러운 오염원들을 녹색으로 위장해 국민들을 기만하고 나아가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녹색이 아닌 것은 녹색이 아니라고 말하는, 당연한 일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