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붕괴사고 현장에서 정몽규 회장의 진정성 없는 사과와 사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왜냐면] 장헌권 | 학동·화정동 참사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곧게 뻗은 길이 있다. 모양이 똑같은 짐차가 나란히 달린다. 앞차는 밀가루를 실었다. 뒤차는 시멘트를 실었다. 길을 가다가 두 화물기사는 소변이 마려워 길가에서 실례를 했다. 그리고 각자 차에 올랐다. 나중에 차가 바뀐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에라 알 게 뭐야. 내 건가?”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운전만 했다. 시멘트를 실은 기사는 늙은 부자가 집을 짓는 공사장에 물건을 배달했다. 일꾼들은 바로 시멘트가 아니라 밀가루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일꾼들은 “에라 알게 뭐야! 내가 살 집인가?”라고 했다. 밀가루를 실은 기사는 과자를 만드는 공장으로 물건을 배달했다. 일꾼은 밀가루가 아닌 시멘트라는 것을 알고 중얼거렸다. “에라, 알 게 뭐야! 내가 먹을 과자인가?”
어느 날 양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집이 무너져 그 밑에 깔린 아이들의 등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과자 가게에서는 손님들의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반면 운전사들은 그 뒤 많은 돈을 벌어 달나라 땅을 샀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나라 땅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았다. 이현주 작가의 동화 <알 게 뭐야!>의 내용이다. 짧지만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동화다.
지난해 6월9일 광주 동구 학동에서 5층 건물이 6차선 도로 쪽으로 무너졌다. 운행 중이던 ‘운림54번’ 시내버스를 그대로 덮쳤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9명이 목숨을 잃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광주에서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1일 화정동 아이파크 외벽 및 내부 붕괴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공사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5명은 실종되었다. 광주 시민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이끈 기업은 지난해 6월에 이어 이번에도 현대산업개발이다. 이 업체는 이윤만을 생각하고 부실 공사를 저지른 것은 물론, 실종자들을 구조하는 일보다는 오직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사고가 터지자 한장짜리 형식적인 사과와 함께 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지만, 지금은 책임 회피성 사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도리다.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이윤만을 위해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공사를 해오다 참사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에 대해서는 책임자 처벌 등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론 보도와 관련자 증언을 들어보면 사고 원인으로는 동절기 공사 규정과 안전 규정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무리한 공사 강행 등이 꼽힌다. 불법적인 하도급과 불량 레미콘 사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신속하고 엄정하게 사고 원인에 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시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이것만이 아니라 건설자본의 이익을 우선 배려하는 행정 또한 달라져야 한다. 광주시는 그토록 많은 안전 관련 민원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민원을 처리하지 않고 안전점검 등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점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또한 이번 참사로 국회 처리 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와 별도로 건설 현장의 발주와 설계, 감리 등 과정별 주체에 대한 책무를 부여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도 시급하다. 지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이다.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건설산업기본법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광주 학동 참사와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모두 “알게 뭐야!”라는 식의 무책임과 안전 불감증으로 발생한 총체적 인재다.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