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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대선 후보에게 과학정책을 묻는다

등록 2022-01-26 18:12수정 2022-01-27 02:31

대학 연구기능 어떻게 강화할까

[왜냐면] 호원경 | 서울대 의대 교수

대선이 한달 반 남았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는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국민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현안을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후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과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냥 후보 입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학에 대한 후보의 생각을 묻고 판단하자는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온갖 자극적 이슈가 넘치는 상황에서 과학 정책에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얼마 전 본 영화 <돈 룩 업>이 떠오른다. 세상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연구를 근근이 해나가던 교수가 대학원생과 함께 우연히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치가와 미디어를 상대로 이를 알리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극적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정부 지원에 의존해 연구를 이어가는 모든 연구자들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 현실에 살고 있다. 과학 정책이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에 영향을 받는 정치의 특성은 정부의 지원이 당장의 경제적 이익과 연관된 연구에 집중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치우침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구개발비를 목적별로 나누어 볼 때 경제발전 목적의 투자 비중은 오이시디 평균이 23%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49%로 단연 최고이다. 경제발전 목적의 연구 비중이 높은 것은 개발도상국의 특징이며, 선진국에서는 이를 주로 기업이 맡는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개발도상국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 되었으니,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를 기대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얼마 전 한 대선 후보가 과학기술 공약을 발표하며 성공 가능성이 높고 수익성이 담보되는 응용기술 연구는 기업에 맡기고 정부의 지원은 돈이 안 되는 기초연구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직접 밝힌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는 경제발전 목적의 기술개발 연구지원에 치중해왔던 기존의 과학기술 정책으로부터의 근본적 전환을 암시하는 중요한 발언이다. 하지만 공약의 내용에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 담겨 있지는 않아서 실제 실행할 의지가 있는지 확신을 주지는 못했다. 언론의 관련 보도에서 이 발언의 의미를 짚고 넘어간 기사를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수년간 제자리걸음이던 기초연구 지원 예산을 2배로 증액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당시 고사 직전이었던 대학연구에 대한 응급 처방으로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책적 전환을 이루기에는 미흡하였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구개발 투자가 일찍부터 이루어진 선진국에서 기초연구 지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구진흥을 목적으로 대학에 주는 대학연구진흥기금(General University Fund)으로, 이 기금이 정부 연구개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 39%, 영국·프랑스·일본은 25%가량이다. 이들 국가에서 대학이 선도적인 연구의 중심 기관이 된 이유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는 아예 이 항목 자체가 없다. 우리나라도 대학다운 대학을 가지려면 이제부터라도 대학연구진흥기금을 신설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기능 강화를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 해결과 연결시키는 방안도 적극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머지않아 대선 후보의 티브이(TV) 토론이 시작될 것이다. 과학 정책에 대한 토론의 수준을 보면 다음 정부에서 우리나라가 추격형 국가에서 벗어나 선도형 국가로 발돋움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종목을 바꿔가며 집중투자 분야를 나열하는 것을 과학기술 정책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과학 본연의 역할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과학 정책의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 <돈 룩 업>에서의 정치와 여론은 위험을 알리는 목소리보다 위험을 기회로 바꾸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정치와 여론이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데 있어 과학자의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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