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의현 |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벤처기업부는 2007년부터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제도’ 및 ‘직접생산 확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제도는 대기업의 공공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만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직접생산 확인 증명서(이하 증명서) 발급 업무는 중소기업 대표 민간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담당하고 있으며, 증명서 발급 시 반드시 거쳐야 할 현장 실태조사는 현장을 잘 알고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해당 업종의 중소기업협동조합(이하 조합) 등이 ‘대표 관련단체’로 지정돼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지난해 12월6일 중기부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도 및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느닷없이 대표 관련단체 지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조치는 조합 등 대표 관련단체의 의견 수렴은커녕 사전 안내조차 없이 진행된 터라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중기부는 대표 관련단체 지정 폐지 근거로 이해관계자 간 갈등, 절차의 투명성·공정성에 대한 국정감사 지적 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이 수행하고 있는 직접생산 확인 현장 실태조사는 중기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조사원이 공장, 소재지, 생산시설·공정·인력 등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적합 여부만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중기부에서 말하는 절차의 투명성‧공정성 결여 주장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현재 직접생산 확인 현장 실태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조합은 200여개로, 조합에 소속된 전문인력만 해도 400여명에 이른다. 대표 관련단체 지정이 폐지되면 전체적으로 100명 이상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의 경우 전체 직원 7명 중 실태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3명의 해고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업계의 현황이나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정책을 건의하고, 각종 지원시책을 현장에 적용하는 업종 대표단체로서의 조합 기능이 급격히 약화되어 개별 중소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하청생산, 타사 제품 납품 등의 문제점은 증명서 발급 이후 납품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안으로 증명서 발급을 위한 현장 실태조사를 수행하는 조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는 오히려 제도의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중기부가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문제의 원인을 조합 탓으로 돌리면서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에 일감을 몰아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중소기업유통센터는 백화점, 홈쇼핑 사업이 주력으로 직접생산 확인 현장 실태조사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다. 200여개 조합과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대표 관련단체 지정 폐지 문제를 업계와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중기부의 처사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졸속 행정이라 볼 수밖에 없다. 국가 행정은 절차와 관련 규정에 따라 모든 국민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먼저 실태조사를 통한 현황 파악을 마친 뒤 관련 규정에 따라 시정할 수 있도록 개선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될 때 비로소 제도 폐지 등 단호한 조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정책은 순간순간 위기는 모면하게 해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은 훗날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지금이라도 중기부는 당위성과 필요성이 불분명한 직접생산 확인 대표 관련단체 폐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