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달 31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왜냐면] 민경태 |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택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라.”
이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독일군 강경파 장성들에게 비스마르크가 내놓은 경고성 발언이다. 즉, 상대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먼저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만큼이나 어리석다는 의미다. 선제공격이 유리할 것이라는 착각, 상대가 먼저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환상 등은 인류가 전쟁을 되풀이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마도 그런 어리석음은 인간의 뇌 구조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3개의 층으로 구성된 인간의 뇌에서 가장 안쪽 ‘파충류 뇌’는 본능을 담당하고, 이를 둘러싸는 ‘포유류 뇌’는 감정을 담당하며, 대뇌피질부 ‘영장류 뇌’는 가장 진화된 지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한다. 특히 ‘파충류 뇌’는 인류가 굶주림, 극한 기온, 맹수 등의 위협으로 시달리던 원시시대부터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오늘날의 인류는 그 기능을 잘 발달시켰던 선조의 후손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 간 갈등과 대립 국면을 ‘파충류 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경우다. 자국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본능 때문에 매우 파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책결정자가 불안한 평화보다는 차라리 선제공격으로 희생을 치르더라도 먼저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극히 위험하다. 기술 발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진 오늘날, 과거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파충류 뇌’의 의사결정 방식이 이젠 오히려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위협 요인이다. 소위 ‘선빵’이 최선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안보를 다루는 중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선 ‘파충류 뇌’의 위험경고 기능을 적극 활용하되, ‘영장류 뇌’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막강한 군사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상대를 무조건 단호하게 굴복시켜야 한다는 담력게임은 무모하다. 최근 제기된 대북 선제타격론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부추긴다. 만약 선제타격으로 북한 핵을 100% 무력화하지 못할 경우엔 우리가 핵 보복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북한 미사일을 사전에 제압하겠다는 ‘킬체인’은 현실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개념이다. 정찰위성 등을 통해 북한 미사일 기지를 관찰하다가 발사 움직임이 포착되면 선제공격한다는 것인데, 준비 단계를 감지하기 어려운 연료 방식의 미사일을 북한이 갖추게 되면서 이를 실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미 좌표가 파악된 미사일 기지가 아니라 이동식 발사대를 활용할 경우 킬체인은 무력화되기 쉽다.
수도권 방어를 위해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주장도 실익은 전혀 없이 동북아의 긴장만 고조시킬 수 있다. 중장거리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가 수도권 방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 군과 미국에 의해 확인되었다.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 공격만으로도 우리 수도권의 피해는 엄청날 것인데, 북한이 이보다 수십배 비싼 중장거리 미사일을 고각 발사해서 공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선제타격론과 사드 배치는 군 내부에서 작전계획상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 메시지로 내는 것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기만 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남북이 서로 상대의 창과 방패를 뚫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면 악순환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작은 한반도 땅에서 전면적 충돌이 발생하면 비록 우리가 전쟁에는 이기더라도 실질적 승자 없이 남북은 공멸한다. 결국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 될 군사력 증강에 매달리는 ‘치킨게임’은 남북의 주민들만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연간 50조원 이상 국방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다. 그럼에도 군비 증강이 한반도 평화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믿는 의사결정 방식에 의존해서는 우리 스스로 제2의 한국전쟁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선의 국방은 전쟁이 필요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현명한 미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