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범(아무르표범)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인 대형 포식자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도 대도시 한양에서 사람과 공존했다. CGWP.co.uk, 런던동물원협회(ZSL) 제공.
[왜냐면] 이항 | 서울대 교수·한국범보전기금 대표
범띠해를 맞아 호랑이 관련 마케팅과 행사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동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표범이다. 범은 표범과 호랑이를 함께 일컫는 순우리말이니 임인년 새해는 곧 표범의 해이기도 하다. 우리가 물려받은 수많은 이야기와 속담, 민화 등 범과 관련한 유산은 조상들이 호랑이뿐 아니라 표범과 밀접히 접촉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민화에 나오는 상당수의 범은 줄무늬 호랑이가 아니라, 점무늬 표범이다. 그런데 최근 ‘호랑이’라는 용어가 ‘범’을 대체하면서 표범은 ‘잊힌 동물’이 됐다.
왜 표범을 기억해야 할까? 우선, 한민족과 한반도를 대표하는 동물에 표범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현재 한국 표범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널리 분포했던 종인 표범은 많은 지역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특히 한국 표범이 가장 절박한 상태다. 한반도에서 이미 모두 사라진 표범과 호랑이는 현재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적은 개체수가 생존해 있는데, 이 지역 호랑이는 약 500마리, 표범은 100마리 정도다. 호랑이보다 오히려 표범이 더 심각한 멸종 위기에 몰려 있어 이들을 살리기 위해 전세계의 동물보호기관과 단체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러·중 접경지역에 서식하는 표범을 러시아에선 아무르표범이라 한다.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표범 보호를 위해 협력하면서 두 나라에 걸쳐 거대한 규모의 국립공원(1만7400㎢)을 최근 설립하고 보전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아무르표범과 과거 한국 표범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이 둘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다시 말해, 지금 북-러 접경지역에 살아남은 표범은 한국 표범의 후손이고, 이들이 번성해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면 한국 표범이 복원된다는 의미다. 다만, 북한의 산림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멸종위기종 보전 방식은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야생 그대로 보전하는 ‘서식지 내 보전’이다. 두번째 방식은 ‘서식지 외 보전’인데, 이것은 멸종위기종을 인위적 환경에서 번식시키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야생의 멸종을 대비하고, 미래에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낼 씨앗을 보존하자는 개념이다. 범의 나라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표범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중장기 보전대책을 수립·시행할 법적 의무를 지니지만, 범 보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표범을 국내 서식지 내에 복원시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볼 때 서식지 외 보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마침 한국 표범 혈통보존 국제전문기구(유럽 아무르표범 EEP)에서 혈통이 확인된 개체를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환경부는 이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한국 표범 서식지 외 개체군을 국내에 확립하는 방안을 찾기 바란다. ‘한국’ 표범 혈통 보존을 외국에 의존하는 것은 국민 자긍심에 상처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