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심재익 |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편히 건너갈 수 있도록 보도와 차도의 경계 부분에 보도의 턱을 낮게 해놓은 곳이 많다. 그런데 이곳에 ‘볼라드’라고 하는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이 보도 경계지점에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행자의 편의를 위한 ‘보도 턱 낮추기’이지만, 이로 인해 자동차의 보도 침범이 우려되어 볼라드를 설치하는 것 같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도에 진입하는 차량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자 최근 들어 신도시를 중심으로 볼라드 설치가 확산되고 있는데, 더러는 사람이 다니는 데 불편한 시설물로 여겨지기도 하며 일부 대리석으로 만든 규격 미달의 볼라드는 보행자, 특히 시각장애인에게는 위험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볼라드의 법적인 명칭은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으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21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볼라드는 야간에도 식별이 가능해야 하며 보행자의 충격 흡수를 고려해야 한다. 법에서도 볼라드의 재질 및 규격을 별도로 명시하고, 보행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또한, 보도 설치 및 관리지침(국토교통부)에서는 횡단보도 부근의 턱 낮추기 구간에서 자동차의 진입 및 우회전 자동차가 보도로 진입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말뚝을 설치할 수 있고 반드시 필요한 장소에 선택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부적합한 장소에 설치된 볼라드는 보행 장애물일뿐더러 더욱이 관련 규정에도 없는 대리석 볼라드는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물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차량의 보도 침범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치된 볼라드가 모두 연석을 기준으로 보도 안쪽에 있는데, 여건에 따라 보도보다는 차도 쪽에 볼라드를 설치하면 보행자의 안전에 더욱 유리하다. 교차로 모퉁이와 도로 구간 바깥 차로가 필요 이상으로 넓을 때가 주로 해당된다. 넓은 교차로의 경우, 우회전 차량이 보도로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교차로의 모퉁이를 좁히면서 차도 안쪽으로 안전지대와 함께 볼라드를 배치하는 것이다. 모퉁이가 좁으면 그만큼 차량이 천천히 우회전하게 되고 횡단보도 사고 예방에 더하여 보행자에게 심리적 안정감도 줄 수 있다.
횡단보도 가까이 불법 주정차가 우려되는 도로 구간의 경우에는 횡단보도를 중심으로 부근의 주정차 금지 구간을 묶어서 차도에 안전지대와 함께 볼라드를 설치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면 불법 주정차를 구조적으로 방지하는 것은 물론, 그만큼 차로가 좁아지기 때문에 횡단보도에 접근하는 차량의 속도 저감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볼라드가 제공하는 한걸음의 완충 공간이지만, 때에 따라 운전자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는 순간을 끊을 수 있다.
운전자의 사소한 실수가 보행자에게는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운전자의 실수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한 도로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고 볼라드도 그 일부이다. 사고 예방과 보행자의 편의,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기 어렵다. 디테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볼라드, 필요한 장소에 제대로 설치하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