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정열 전 농특위 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에서는 ‘농민권리선언’이라는 다소 생소한 명칭이 붙은 포럼이 운영되었다. 농민권리선언이라니? 그런 것도 있어?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농민권리선언)은 2018년 12월27일 뉴욕에서 열린 74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선언문에는 식량권과 건강권, 정치적 권리, 참여권, 이주권, 여성농민의 권리, 생물다양성의 권리, 자연 자원에 대한 권리, 농민 공동체에 대한 권리 등 다양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5억명 이상이 농촌에 살고 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농촌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기아와 빈곤,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국제사회에 있었다. 특히 2006~2007년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겪으면서 농민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가난과 불평등 해결이 전세계인들의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후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자본의 권리가 아니라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길이라는 인식 또한 점차 확산되었다. 이러한 절박한 문제의식과 위기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농민권리선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선언에 대해 ‘기권’을 했기 때문인지 국내 농업정책 담당자, 농업 관련 전문가들조차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 권리를 보장받고 향유해야 할 당사자인 농민들조차도 이 선언에 대해 잘 모르는 실정이다. 정부는 기권했으나 농민권리선언은 121개국의 찬성으로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기에, 이는 국제사회의 인권 규범이 되었고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이 선언에 규정된 농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진다. 이 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찬성했던 단체나 국가는 이미 농민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과 제도 개선에 선언의 내용을 반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선언을 요구하고 지지해왔던 단체들과 학자들이 2019년부터 ‘유엔 농민권리선언포럼’을 발족해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 연구와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농특위에서도 유엔 농민권리선언과 이를 둘러싼 국제적 동향을 농민의 권리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와 연계하여 국내 정책과 제도를 검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에 농민권리선언포럼을 발족하여 운영했다. 포럼을 통하여 유엔 농민권리선언을 알리고 국제적 동향이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는 상황을 공론화하였다. 또한 권리적 측면에서 농민의 현실을 조망하고 농민의 권리를 한국적 맥락에서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8개월간의 활동 과정에서 여러가지 아쉬움도 남는다. 농특위 포럼에서는 충북 괴산과 진천, 제주 등을 현장 방문해 농지 등 자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수탈, 농촌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심각한 권리침해 사례 등을 찾아 알리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하였다. 자문기구라는 지위로 인해 정책 집행에 참여할 수 없는 농특위의 한계가 있었지만, ‘농민권리’와 같은 새로운 대안적 정책 영역을 발굴하고 현장과 함께 실행 방안을 모색하는 농특위의 역할은 중요하다. 자신의 권리를 인식한 사람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농민도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