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고성원 메시지 컨설턴트
선거는 게임이다. 전선을 긋고, 전략을 세우고, 승패를 가린다는 점에서 선거는 본질적으로 게임이다. 결과가 과정에 선행한다는 점에서도 선거는 그 자체로 게임이다. 하지만 선거가 게임으로만 남는 순간, 정작 선거가 담아내야 할 이념과 이상은 무색해지게 마련이다. 경계를 짓고, 편을 가르고, 지지자를 포섭하고, 반대자를 배제하는 꼼수와 전략이 난무하는 와중에 어떤 시대정신이든 온전히 그 안에 담겨져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선거의 궁극적인 관심이 최종적인 결과에만 매몰돼 있는 마당에, 유권자 모두가 아니라 그저 51%의 지지만 구하면 된다는 점에서도 선거는 합의나 타협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논리상 49%의 유권자는 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선거는 불행하게도 유권자 절반을 패자로 돌리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그 게임의 논리를 이야기하고 나섰다. 그 안에 어떤 이념과 이상과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을는지도 별반 기대가 되질 않는다. 안 후보든, 윤 후보든 거론되는 관심사는 온통 방법론뿐이다. 여론조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방법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물론 중요하지만, 그저 말뿐이라도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명분을 내세워주는 것이 기본이다.
맹목적인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 될 수는 없다. 정권교체를 시대정신으로 삼고자 한다면, 교체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체에 도달한 이후의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는 어떠한 콘텐츠를 담을 것인지, 새로운 국가 시스템에 대한 비전과 기존의 정책적 실패나 과오에 대한 반성과 회복이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헬조선, 금수저, 불공정과 내로남불, 청년실업, 비정규직, 사회경제적 양극화,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문제는 어떻게 잡고,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에는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지, 콘텐츠와 어젠다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주장대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면 그 내재적이고 구조적인 유발성은 바로 이런 것들에서 기인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전제가 됐다면, 안철수 후보가 말하는 ‘단일화’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향해 있었어도 무방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더불어 정책연대를 구성하고 거대 양당 후보들의 ‘철학의 빈곤’을 질타하는 것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안철수의 단일화가 명분이 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안철수는 게임의 논리로만 이야기하려 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연대와 협치의 논리다. 공동정부든, 통합정부든 자리만 나눠 먹는 정부가 아니라 정책을 공유하고 협치를 만들어내는 정부 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화가 아니라 연정이다.
단일화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단일화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자 한다면, 그 이후를 바라보는 방향성과 청사진이 뚜렷해야 한다. 책임 있는 정치의 자세는 게임에서의 승리에만 몰두하는 자세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자 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2030’과 ‘586’이 갈라지고, 심지어 ‘이내남’과 ‘이대녀’마저 갈라지는 마당에 편을 가르는 게임의 논리만 내세울 수는 없다.
단일화가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스스로를 진영과 게임 논리에 가둬둘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어젠다, 정책과 비전, 이념과 철학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것을 리뉴얼할 것인지, 그것이 이번 대선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