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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산재 추정 원칙’ 후퇴 안 된다

등록 2022-02-16 18:13수정 2022-02-17 02:33

여전히 적은 근골격계 질환 산재 인정건수

[왜냐면] 양선희 노동건강정책포럼 회원·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고용노동부는 작년 말 산업재해 승인율이 높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서, 산재로 추정하여 판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인정하겠다는 고시 개정안을 예고하였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불합리한 산재 승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해당 고시 개정안은 현재 규제심사 대상이 되면서 개정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경영계가 지적하는 지점에 대해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현실을 살펴보면, 추정의 원칙은 도입되어야 하고 오히려 더 확대되어야 한다. 먼저 경영계는 고시 개정으로 근골격계 질환이 과도하게 산재로 인정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 인정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2017년 5차 근로환경조사 보고서에서는 여성의 1.4%, 남성의 1.2%가 업무로 인해 건강 문제가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3일 이상 휴업을 하였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가 인정된 사례는 일하는 사람의 0.08%(1년에 1만5195명)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근골격계 통증을 경험한 사람 중 요통은 11.5%, 상지근육통은 24%, 하지근육통은 16%에 달하고, 이들 중 각 질병에 대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80% 이상이었다. 그러나 2019년 1년 동안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가 인정된 경우는 0.05%(9264명)에 불과하다.

현재도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로 승인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120일 정도로 긴 편이다. 추후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 신청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신속하게 산재로 인정받고 치료받기 위해서는 추정의 원칙이 필수적이다. 많은 근골격계 질환을 경험하는 근로자들은 증상이 있더라도 참을 만큼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고, 산재 신청을 한다. 그런데 그 뒤에도 산재 승인에 이르기까지 긴 기간이 필요하다면 근로자들은 그만큼 고통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신속하게 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돕는 것이 산재보험법의 존재 이유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시 개정안은 산재로 신청한 상병뿐 아니라, 동일 부위에 동반되는 상병에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의 질병을 포괄적으로 치료하겠다는 정부의 훌륭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신체 특정 부위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러니 근골격계 질환과 동일한 부위에 동반되는 질병이 있다면, 그 질병까지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으며 추후 질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업무 관련성 질병은 여러 가지 진단명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동일 부위의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질병만 추정의 원칙으로 신속히 인정하고, 동반된 상병들은 판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결국 소요되는 기간은 고스란히 남게 된다. 근로자의 질병을 신속히 치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추정의 원칙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이다.

경영계는 산재와 동반된 질병이 개인의 특성에 의한 질병으로 알려진 경우에도 산재로 추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러나 현재 개인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그만큼 원인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며, 특히나 직업적 요인에 대한 연구가 아직 없었다는 뜻이다. 즉 현재 시점에서 연구가 없다고 하여 직업적 요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법은 의학이 아니며,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업무 관련성 질병이 과도하게 산재로 인정되기보다는, 의학적 학문적 한계로 인정되지 않는 부분이 훨씬 클 것이다. 산재보험은 현재의 제도적 학문적 한계 내에서 최대한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근로자가 어떻게 더 신속히 치료를 받고 직장에 잘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울지를 고민해야 한다.

법은 산재보험료를 사업주가 100%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정한 이유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아플 때 원활하게 치료받고 직장에 복귀하게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사업주가 낸 보험료로 근로자가 신속히 잘 치료받고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사업주에게도 근로자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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