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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중대재해처벌법 첫 적용 직업성 질병 사건의 의미

등록 2022-02-23 17:53수정 2022-02-24 02:31

[왜냐면] 강희태 |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회장

지난 2월18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번째 직업성 질병 사례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문제가 된 사업장은 상시근로자 257명인 에어컨 부속 자재 제조업체로, 제조 공정 중 사용하던 세척제를 2021년 말에 새로운 제품으로 변경하였다. 바뀐 세척제를 공급한 업체로부터 받은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르면 디클로로에틸렌 등을 포함한 세척제였다. 세척제를 바꾼 이후 작업자 한명이 황달 증상이 있어서 치료를 받았으나 추적검사에서도 이상이 있어 직업성 질병이 의심되었고, 고용노동부가 인지하게 되면서 작업환경측정 및 임시건강진단이 실시되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 트리클로로메탄이 최고 48.36ppm 검출되었는데, 이는 하루 10시간 작업한 것을 고려한 노출 기준 8ppm의 6배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또한 임시건강진단에서 71명 중 16명이 급성중독에 의한 간독성이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작업중지를 명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으로 파악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세가지 중 하나로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 시행령에 따르면 트리클로로메탄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건강진단 대상 화학적 인자로서 이 물질에 의한 급성중독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될지는 사업주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 의무를 잘 준수했는가를 따져야 할 것이고, 이는 조사 과정에서 밝혀야 할 사항이다. 이번 중독 사건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이번 중독 사건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기본수칙만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다. 업체의 주장대로 디클로로에틸렌 등을 성분으로 하는 세척제를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 및 교육, 호흡기 보호구 사용, 국소배기장치 등의 산업보건 관리 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이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업주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둘째, 업체의 주장대로 물질안전보건자료가 거짓되거나 부실하게 작성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일선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정보가 물질안전보건자료인데, 이 자료가 잘못되어 있다면 화학물질 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 1호 직업성 질병 사건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와 기록, 알림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맞아 사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사고보다 잘 보이지 않는 직업성 질병에 대한 예방에 투자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직업성 질병은 산업재해 통계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사업장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전만큼 보건 분야에도 인력, 자원, 예산 등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 이번 중독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서 처리하지 않는다면 직업성 질병 예방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최소한의 산업보건 조치들은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히기를 바란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의 적정성 평가 등 산업보건제도가 작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도 필요하다. 직업성 질병으로 쓰러지는 노동자들을 줄이려면 이번 1호 직업성 질병 사례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 및 대책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고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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