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백범흠 | 연세대 겸임교수·전 주프랑크푸르트총영사
우리나라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많게는 수백만명의 국민이 희생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 전쟁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이상으로 잔인하고, 참혹했던 전쟁을 일곱차례나 겪었다. 우리는 전쟁을 당한 객체였다.
우리가 자주 침공당했던 것은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 외교도 제대로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동아시아의 변방 국가였던 우리는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에야 외교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주요 7개국(G7) 수준의 선진국이 된 지금도 우리 언론과 국민들의 국제 정세와 외교에 대한 관심 정도에는 큰 변화가 없다. 국회 등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우리 언론은 미얀마, 남중국해, 아프가니스탄, 발트 3국, 우크라이나 등 우리 경제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또는 지역) 문제에 대해 얼마나 자주 보도하고, 국민들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미-중 신냉전 추이, 러시아의 팽창 시도, 그리고 반도체, 리튬, 공급망 전쟁 등에 대해서는? 정치인, 연예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보도하고, 국민들도 잘 알고 있는데,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교에 대한 관심도는 왜 이렇게 떨어질까? G7 국가 모두 외교장관이 수석장관직을 맡고 있는데, 강대국에 에워싸인 분단국가 우리 외교부는 왜 이렇게 위상이 낮을까? 750만명 국민(동포)이 여행, 거주, 사업차 국외에서 활동하고, 무역액이 1조2600억달러에 달하는 나라의 외교부 규모나 위상은 왜 이렇게 보잘것없을까? 나라는 국내총생산(GDP) 1조8239억달러, 무역액 1조2600억달러, 군사력 세계 6위 등 G7 수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는데, 외교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왜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수준’에 머물러 있을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22년 초 현재는 러시아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위협, 공격하는 등 분쟁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기 유럽 국가들의 천연가스 부족 사태,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너지, 경제·통상 문제도 국가 안보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쟁의 상시화로 인해 금융, 에너지, 원자재 등 분야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커지고 있다. 군사와 금융·에너지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결합된 복합안보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국민들의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 제고와 함께 외교부 선진화가 필요하다. 외교부 선진화는 1차로 우리와 여러 면에서 규모가 비슷한 G7 국가 이탈리아나 캐나다 외교부 수준으로 우리 외교부의 위상을 제고하고, 규모도 획기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추가로 필요한 인원은 역할이 줄어든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중에서 선발하면 된다. 외교장관직을 다른 선진국들과 같이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장관에는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경제·통상, 군사 등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유라시아 등 세계 각 지역과 재외국민 보호, 군사안보, 과학기술 등 기능을 담당하는 차관, 차관보급 직위도 대폭 확충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군사와 경제·통상·과학기술 분야를 종합적으로 담당할 부서를 신설해, 전쟁 포함 모든 종류의 안보위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