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아파트 앞에서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한 여성이 절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왜냐면] 박기갑 | 고려대 법전원 교수·대한적십자사 인도법자문위원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언론매체는 전투 상황을 상당히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적 도발 행위는 다른 국가에 대한 무력의 위협·사용을 금지하는 유엔헌장 2조 4항의 명백한 위반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마비된 상황에서 소집된 긴급특별유엔총회는 즉각적인 러시아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였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공격 명령을 철회할 의도가 없는 듯하다. 월등히 우세한 군사력을 앞세운 러시아는 지금도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거주지에 무차별 포격을 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대도시 함락을 목표로 이러한 공격은 한층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시가전과 도시봉쇄 상황이 길어질 경우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무차별적인 살상 효과를 갖기 때문에 국제인도법상 금지된 무기를 러시아 군대가 사용하고, 원칙적으로 공격이 금지된 원자력발전소에까지 포격을 가하는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군사적 충돌로 말미암아 희생되는 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 국제인도법은 무력 충돌 시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거나 더이상 직접적으로 가담할 수 없는 사람들, 즉 부상자와 병자, 전쟁포로 그리고 민간인과 민간 재산 등을 보호하고, 전쟁의 수단과 방법을 제한하는 것을 모색하는 국제법의 한 분야이다.
국제사회로부터 불법한 침략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규탄을 받는 러시아는 조급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가속할 것이다. 설령 러시아 군사행동 자체의 불법성을 차치하더라도, 러시아군은 국제인도법에서 금지하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군사적 필요성과 무관하게 전투원과 비전투원에게 고통과 상해를 가하는 행위는 금지되고 있음을 재인식해야 한다. 특히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교전자는 항상 민간인과 전투원, 민간물자와 군사목표물을 구별해야 한다는 ‘구별의 원칙’은 국제인도법에서 매우 중요하다. 민간인은 단체로서든 개인으로서든 공격받아서는 안 되며, 공격은 전적으로 군사목표물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또한 러시아 군대가 점령하는 지역이 확대되고 있는바, 그러한 점령지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성, 기본권 및 정치적·종교적 신념 등은 존중되고 일체의 폭력 및 보복으로부터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위에서 적시한 국제인도법 원칙과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는 ‘전쟁범죄’로서, 이를 자행한 자를 기소·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국제형사법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존재한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뒤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영토에서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한 죄 등 심각한 국제범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을 인정하였으며, 이와 별도로 39개 국제형사재판소 당사국들은 지난 2일 공동명의로 현 상황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 검찰부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당사국에 의한 회부’ 요청 서한을 제출했다.
과연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실제로 전쟁범죄를 범한 러시아군 수뇌부를 국제형사재판소가 단죄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군사령관 등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출두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국제형사재판소 재판이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헌장인 로마규정 63조 1항은 “피고인은 재판하는 동안 출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결석재판은 불가능하다.
다만 가상적인 시나리오로서 만일 러시아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서 러시아 국내 법원에 의한 형사처벌 가능성, 러시아의 새 정부에 의한 국제형사재판소로의 신병인도 가능성, 또는 수배령에 의해 제3국에서 체포되어 국제형사재판소가 신병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등은 열려 있다. 푸틴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서의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는데, 로마규정 27조는 한 국가의 고위공직자라는 신분은 국제형사재판소가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끝으로 이러한 개인의 형사책임 추궁과는 별도로 국가적 차원에서도 러시아 정부는 침략전쟁이라는 국제법상 불법행위로 말미암은 국가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