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김혜영 | 월드비전 북한사업실 팀장
세계 곳곳에서 폭염과 한파, 홍수, 가뭄, 대형 산불 등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도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 다양성 파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기후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그 기회는 환경, 과학적 접근만으로 찾기 어렵다. 역사, 사회, 경제, 정치와 같은 구조적 맥락 속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맥락은 불평등, 기후 정의의 관점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라고 볼 때 그 책임은 선진국, 부유층, 현세대가 더 크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은 온실가스를 더 적게 배출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더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또한 ‘세대 간 정의’를 살펴보면, 현세대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미래 세대는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위기보다 더 자주, 더 심한 피해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이 가져오는 취약성도 살펴보아야 한다. 재난은 위해 요소와 취약성의 결과이다. 기상이변이라는 위해 요소가 발생해도 취약 국가의 경우 더 심각한 재난 피해를 겪는 것이다. 또한 취약 국가는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낮기 때문에 회복을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기후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이 기후 재난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탄소 중립을 기반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기술 및 재정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 역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책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 북한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이러한 고민 끝에 월드비전은 얼마 전, 통일부와 학계·민간단체 등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북한에서는 매년 가뭄, 홍수, 태풍,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황에 놓여 있다. 식량 상황이 악화되면, 아이들은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할 수 없어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편 북한의 탄소배출량은 2000년 이후 경제난으로 인해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북한의 탄소배출이 적다고 해도 앞으로 북한이 경제 발전을 해나갈 때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물적, 기술적 토대 마련이 필요하다. 북한이 기후변화에 따른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며, 탄소 중립을 기반으로 에너지난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협력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대북제재’이다. 다른 개도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진행하는 능력배양사업조차 북한에서는 시작하지 못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 기후변화 대응 역량 강화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신청을 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서 불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한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하더라도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북한. 같은 한반도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처럼 ‘기후 공동체’로서 북한을 바라볼 때 새로운 협력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정치경제적 담론을 뛰어넘는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